▲미국의 인공지능 개발사인 OpenAI가 개발한 언어 모델 기반 챗봇 ChatGPT
연합뉴스
출판사에서 한 권의 책을 낼 때, 편집자와 작가는 파트너가 된다.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전담하고, 작가는 때때로 편집자에게 의지한다. 글은 결국 작가가 쓰는 것이라 해도 책을 내기까지 편집자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다(직접 출간하는 경우는 또 다르지만). 그렇다면 편집기자인 내 글은 누가 볼까? 당연한 말이지만 편집기자가 본다. 그 선배가 지난봄에 말했다.
"지난번에 업계 동향을 살피느라 챗GPT에 제목을 뽑아보라고 기사 핵심 단락 몇 개를 집어넣었더니 무난하게 뽑긴 하던데 약간 미국 매체 스타일이더라구요. 그래서 밥벌이 걱정 안 해도 되겠단 생각을... 그래서 말인데, AI의 제목을 기사 소재로 한번 써보면 어떨까?"
그로부터 6개월도 넘게 지나서 챗GPT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진 어느 주말, 인공지능(AI)에게 말을 걸어봤다. '직장에서 거절하는 법'을 다룬 글의 한 단락을 넣어주고 제목을 뽑아달라고 했다. '자아를 찾는 여정', '자유롭게 결정하는 법', '강한 나로 변화하기 위한 첫걸음' 같은 제목들이 나열되었다. 선배가 말한 '약간 미국 매체 스타일'이 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명사형으로 끝나는 문장을 좀 더 구체적인 동사형으로 바꿔 달라고 해봤다. '거절을 통해 내 의견을 표현하다', '거절로 나의 삶을 디자인하다', '거절의 용기를 가지다'로 바꿔주었다. 노력은 가상하다만, 쓸 만한 제목이 없었다. 순간, AI에게 역할을 부여하면 더 임무 수행을 잘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났다. 나는 즉시, 역할을 부여해봤다.
"너는 시민들이 쓰는 글을 편집하는 편집기자야. 편집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뭔 것 같아?"
AI 편집기자의 답변은 길었지만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 이해와 공감(글쓴이의 의도와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 존중과 배려(각각의 의견과 관점에 대해 존중하고,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어야), ▲ 정확성과 신뢰성(편집기자는 사실 확인과 정확성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 객관적인 판단력(문맥, 문법, 스타일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글을 수정하거나 개선하는 작업), ▲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능력(편집 작업은 작가와 혹은 기사 작성자와의 원활한 소통과 협업이 필요).
이거 봐라? 꽤 그럴듯한 내용이었다. 신뢰도가 1정도 상승했다. 이번에는 "제목에 대해 시민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뭘까?"라고 물었다. AI 편집기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을 보여줬다.
▲ 흥미로운 제목(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유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 명확한 내용 전달(글의 제목이 내용과 일치하며, 명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다), ▲ 감정과 호소력(글의 제목이 감정과 호소력을 담아내는지 여부를 궁금해한다), ▲ 짧고 간결한 형식(짧고 간결한 형식으로 작성된 제목에 관심을 갖는다), ▲ 창작성과 참신함(독특하거나 예상치 못한 접근 방식 및 아이디어가 담겨있는 독창적인 제목은 높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
AI 편집기자와 대화, 갑자기 찐동료가 생긴 기분
굉장히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필요한 내용 정도는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중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사례를 알려달라고 물었다. AI 편집기자는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은 독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자극하여 글을 읽게 만들고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서 아래와 같은 제목을 보여줬다.
"눈물 쏟게 하는 이야기"
"가슴 벅차오르는 소식, 세상을 움직이다"
"화제의 인터뷰: 그녀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받다"
"절규하며 소리치는 현실,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펼쳐진 인간 드라마"
이건 좀 실망이다. 신뢰도가 마이너스로 급격히 하락했다. 이런 제목으로 요즘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인간을 너무 얕본 거 아닐까? 하지만 '화제의 인터뷰'랄지, '드라마', '벌어진 일들', '일어난 일들' 같은 말들은 제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말들이긴 했다.
이번에는 AI 편집기자에게 '좋은 제목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AI 편집기자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글의 핵심 내용과 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정의하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열했다.
▲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해하기 쉽고 핵심을 집중), ▲ 독자의 호기심과 관련성(독자들이 주제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단어, 문구 또는 질문 등을 사용하여 호기심을 자극), ▲ 가치와 유익한 정보 전달(제목이 글의 가치와 유익한 정보를 잘 반영하며, 독자들에게 어떤 혜택이나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지 암시), ▲ 창조적이고 원래성 있는 접근(일반적인 표현보다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다뤄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상을 줌), ▲ 감정적인 연결과 공감(긍정적인 감정이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단어나 문구를 사용하여 독자들과 감정적인 연결을 만듬).
내용이 구체적이진 않지만 내가 '제목의 이해'에서 다뤘던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있다는 데 일단 놀랐다. 편집기자로 일한 지 20년 만에 이런 글을 써볼 마음을 먹었던 걸 생각하면, AI 편집기자는 단 몇 분 만에 목차에 가까운 내용을 정리해 준 셈이니까. 갑자기 찐동료가 생긴 기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이날 예정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AI 편집기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제목의 특징이 있는지, 있다면 20대들이 좋아하는 제목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40, 50대들은 또 어떤 제목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편집기자가 좋은 제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했다. AI 편집기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공부하고 개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사 헤드라인 작성 기법(효과적인 기사 헤드라인 작성에 대한 기법과 원칙을 학습, 예를 들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구성, 호기심 유발, 감정적 연결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제목을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 독자 타깃팅(각각의 기사나 주제에 맞는 독자 그룹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관심사와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 ▲ 창의적 사고와 문장 구조(창의적인 사고와 다양한 문장 구조를 개발하는 것은 좋은 제목 작성에 큰 도움이 됨), ▲ 시각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잘 디자인된 시각적 요소와 타이포그래피는 제목의 가시성과 인상력을 높여줌) 등.
구체적이지 않은, 한계가 명확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건 AI 편집기자도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후배 편집기자들에게 알려 줄 제목 팁이 있다면 뭘까?'라고 묻자 AI 편집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 핵심을 강조(제목은 기사의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후배 편집기자들에게 핵심 포인트를 파악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제목 작성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 호응할 수 있는 언어 사용(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호응할 수 있는 언어와 용어를 사용해야), ▲ 긍정적인 감정과 호기심 유발(긍정적인 감정과 호기심은 독자의 관심을 끌고 기사를 읽도록 유도합니다. 그것을 유발하는 단어, 문구, 질문 등의 활용 방법에 대해 안내해 주세요), ▲ 타깃 독자 그룹 고려(타깃 독자 그룹 분석 및 이해,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와 욕구에 부합하는 제목 작성 방법론을 가르쳐 주세요), ▲ 실험과 개선(다양한 접근 방식 시도하고 결과를 평가하여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습관을 가지도록 격려해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내용은 경험이 많으신 20년 차 편집기자님의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추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경험에서 나온 팁이나 예시를 함께 공유하여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AI 편집기자가 실망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