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구조된 섀클턴과 27인의 대원들
Frank Hurley/Scott Polar
섀클턴 정신을 이어받기
20여 년 전, 9살의 가을날에 우리 가족은 주왕산 국립공원에 단풍을 보러 갔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작은 연못의 징검 다리를 건너다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으앙!" 울음을 터뜨렸고 아빠가 재빠른 순발력으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쑥 꺼내줬지만, 허리 밑으로는 다 젖어버린 불운의 어린이가 되었다.
그 가을날 엄마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섀클턴 정신을 실천했던 것 같다. 원래의 계획이 실패한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목표를 바꾸면 된다. 바람은 차갑고 햇볕은 따사로웠던 가을날. 오빠의 내복을 빌려 입고, 바지와 양말과 신발을 너른 바위 위에 올려 오징어처럼 말려두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아유~딸내미가 물에 빠졌나 보네~" 하며 놀리며 지나가던 것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아직도 가족모임에선 주왕산 입수 사건이 종종 언급되곤 한다.
뜻대로 된 것보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기억들이 내 안에 더 강렬하게 남는 법이다.아무 일 없이 계획대로 주왕산 정상에 올라갔다 왔으면 가을 가족여행의 해상도가 이 정도로 선명할까.
문득 떠올린 나의 어린 시절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물에 쫄딱 젖어 엄마한테 혼구녕이 났지만 이제는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니 괜찮다고.
주왕산 주봉에 올라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개울가에 앉아 물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놀면 된다.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우리 어깨 위에 잔뜩 올라가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주고, 인생을 좀 더 유머러스하고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든다.
"오히려 좋아" 마인드를 널리 이롭게 알리며, 삶에 유연성을 불어 넣으며 살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면 그 생각만으로 등 뒤에 매트리스는 아니지만 도톰한 요 한 장쯤은 깔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실패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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