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아도 국가는 어떠한 지시,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며 "정부 책임자들과 해경 구조 세력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을 했다"고 규탄하고 있다.
유성호
"아이들이 과연 뭘 보고 배울까?"
3일 아침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 지휘부의 부실 대응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교사로서 허탈해졌다. 직급이 높고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업무상 과실 책임이 가벼워진다는 걸 여실히 보여줘서다. 권한과 책임은 비례한다는 불문율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고 해도 할 말 없게 됐다. 부와 권력을 모두 손에 쥔 그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면책 특권'까지 보장받은 셈이니, 말 그대로 죽은 이들만 불쌍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에 형사 책임을 진 사람은 현장 지휘관이었던 당시 123정장이 유일하다. 고위직의 법적 책임이 생떼 같은 아이들 수백 명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참회이자 도리일 텐데, 말단 공직자 한 명만 처벌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족들의 눈물겨운 호소는 차디찬 법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에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게 될 듯하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이미 끝난 상태이고,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 총책임자들은 물론, 기소된 관할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장 역시 법적 처벌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고 예측이 어려웠다면 법적으로 처벌하기 힘들다는 게 대법원의 논리였으니, 관련 공직자 모두 죄가 없다며 뻗댈 수 있게 됐다. 현장 책임자로 지목된 용산경찰서장도 "사건 발생 사실을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자칫 이태원 참사 역시 죽은 이들만 불쌍하게 될 판이다.
'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마저 고위공직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더는 유족들이 기댈 곳은 없다. 세월의 더께 속에 부박한 세상의 인심도 유족들 편이 아니다. 시들어버린 여론의 관심에 언론도 발을 빼게 될 것이다. 시민들의 가슴에 단 노란 리본과 손목에 찬 노란 고무링만이 그들을 위로할 뿐이다.
현실에서 법과 인권의 거리는 멀다. 입만 열면 '공정'과 '상식'을 부르대지만, 법은 늘 강자의 편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이들 모두 강자이기에, 법은 태생적으로 그들에게 봉사할 수밖에 없다. '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약자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강자의 용어다. 본디 '법치'란 강자의 횡포를 제어하기 위한 약자의 방어 수단이었다.
구조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 고위공직자들의 무죄 판결 소식에 순간 가슴에선 불길이 일었어도, 한편으론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생각도 교차했다. 뉴스를 접한 아이들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심드렁한 표정엔 이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비아냥과 무력감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참으로 민망했다.
직급이 높을수록,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수록 법적 책임이 가벼워지는 모순이 법정에서 증명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나무라기도 뭣하고, 업무 수행에 있어서 그들의 자발성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숱한 참사에도 고위공직자는 무탈하고, 말단 공무원만 처벌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봐온 터다.
이번 판결 말고도 그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정부 기관부터 사기업, 이익단체, 학교에 이르기까지, 권한과 책임이 비례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마다 고위직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은 하위직에 떠넘기는 게 전가의 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