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결제기
김나라
몇 주 전 경상도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서울에 있는 나의 자취방에 방문하셨다. 자취를 시작한 지 별로 되지 않아 물건도, 음식도 많지 않았다. 이에 할머니께서는 손녀를 챙겨주고 싶으신 마음에 라면이라도 사다 놓겠다고 하시며 편의점으로 향하셨다.
그러나 편의점을 다녀오시겠다던 할머니께서는 빈손으로 돌아오셨고, "기계만 있고 직원이 없어서 못 샀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의 자취방 앞에 있는 편의점은 무인매장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할머니께서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면서 자란 나는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은 적이 없어서 무인매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같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무인 편의점부터 무인 카페, 무인 세탁소, 무인 서점 등 직원 없이 키오스크에만 의존한 채 운영되고 있는 무인매장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실제로 키오스크는 고객들에게 더 빠르고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주에게는 인건비 절약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키오스크 보급 매장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5월 낸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8만 9951대였던 국내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2022년 45만 4741대로 3년 새 2배 넘게 증가했으며, 특히 요식업의 경우 키오스크 설치 매장이 무려 1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키오스크가 사용되고 있는 업종 또한 매우 다양한데, 음식점 및 카페부터 은행 또는 금융기관, 소매업과 상점, 항공사나 여행사,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키오스크가 사용되지 않는 업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늘날 키오스크 이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키오스크가 증가했다고 해서 모두가 키오스크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할머니를 포함한 디지털 소외계층의 경우, 키오스크 수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 불편함이 늘었다.
서울디지털재단이 발표한 '2021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55세 미만 인구의 94.1%가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반면 65~74세와 75세 이상 고령층은 각각 29.4%, 13.8%만이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노년층 대부분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이다.
또한 고령층은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 참여한 65세 이상 고령층 1만 97명 중에서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느꼈다'라고 답한 비율은 무려 64.2%나 됐다. 그렇다면 이들이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소외계층과 키오스크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
무엇보다도 기술적인 면에서 겪는 어려움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키오스크는 업종이나 기관마다 모두 다른 형태, 다른 구성,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계속하여 학습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빠르게 파악하고 사용할 수 있으나 디지털 기기 사용 경험이 적은 노년층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7월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령 소비자 (60대 이상)의 53.6%는 키오스크의 복잡한 작동 방법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령층의 경우 노안이나 난청 등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 보급된 키오스크 대부분은 노안을 겪고 있는 고령층이 읽기에 작은 글씨를 제공하고 있으며 높이 조절이 되지 않아 지체 장애를 가진 분들이 사용하기 어렵다. 또한 음성안내 기능에 문제가 있는 키오스크들도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꼭 '키오스크의 기술적 한계'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디지털 재단이 시행한 '2021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는 고령층들이 키오스크가 어려워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키오스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준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조사대상자 중 29.4%는 키오스크가 필요 없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고령층의 태도 외에도 사회적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은 키오스크 조작이 서툴기 때문에 키오스크 이용에 있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때 디지털 소외계층은 뒷사람 눈치를 보게되는 등 사회적 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키오스크 사용에 있어 더 의기소침해진다.
키오스크와 고령층의 조우: 기술의 벽을 무너뜨리다
즉, 키오스크 조작이 어렵다 보니 '눈치' 등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받게 되고, 이 때문에 키오스크 사용을 피하게 되고, 키오스크 이용이 적다 보니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격차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거나 디지털 소외계층 전용 키오스크 공간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할 수 있으나 이러한 사회제도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 디지털 소외계층이 키오스크 사용을 가장 어려워하는 이유는 '키오스크의 복잡한 작동 방법'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노년층과 같은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해 조작법이 간단한 키오스크를 별도로 개발해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별도의 키오스크가 탑재해야 하는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령층, 장애인과 같은 디지털 소외계층이 가진 신체적 제약을 보완해줄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키오스크 화면의 글씨를 키우고 음성 안내 기능을 모든 키오스크에 탑재함으로써 노안, 난청, 장애 등을 겪고 있는 디지털 소외계층의 편의를 도울 수 있다.
둘째, 키오스크 조작법을 간편화해야 한다. 사진, 한글과 같은 인지가 쉬운 글자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용어를 사용해 고령층이 정보를 이해하는 데 쉽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창에는 하나의 과업만 뜨게 하는 등 간단한 조작 버튼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 '색깔'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고령층이 정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컬러스펙트럼에서 인식률이 높은 빨간색이나 주황색과 같은 장파장의 색을 사용하거나 명도가 높은 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디지털 소외계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며 겪는 불편함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디지털격차 문제는 디지털 소외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다. 따라서 장·노년층과 장애인의 키오스크 활용 증진을 위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과제다. 키오스크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이제는 사회적 제도의 마련을 넘어 모두의 삶의 질을 증진해주는 방향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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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사오겠다던 할머니께서 빈손으로 돌아오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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