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지난달 31일 이후 엿새 연속으로 조문했다.
유성호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위 사무처장을 지낸 오지원은 우리 사회가 참사에 직면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재난 관리 책임자들이 스스로 역할과 책무를 인식하고 어디서 잘못됐는지 확인하고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셋째, 피해자들이 화합하고 연대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우리 사회가 그것을 왜곡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넷 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째, 정부는 역할과 책임을 부정했고 둘째, 수사만 하고 조사는 없었다. 셋째, 피해자들의 연대를 방해했고 넷째, 피해자들을 방치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크리스 아지리스에 따르면 행동과 결과에 집중하는 단일 순환학습(single loop learning)은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는 사람이 많이 몰리면(행동) 사고가 발생한다(결과)는 걸 알게 됐지만 언제라도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중 순환 학습(double loop learning)은 단순히 인과 관계를 넘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가정과 신념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 과정을 빠뜨렸다.
서울대 교수 이재열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러 차례 조사 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비난의 정치만 증폭됐다"면서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는 정치적 갈등은 커졌는데 정작 8년이 지나고도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진석은 만약 현직에 있다면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생각해 봤다고 한다.
애초에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비서실장이나 국정상황실에서 누구라도 한 명 챙겼을 것이고 윗선에서 한 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고 있구나, 중요하게 챙기는구나, 혹시 문제 생기면 큰일이구나,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면 달라진다. 경찰이든 소방이든 늘 하는 일이고 프로토콜만 챙기면 된다. 윗선의 관심사와 우선 순위가 중요하다."
정혜승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리더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면서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리더"라고 강조했다.
콘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다
과연 문재인 정부라면 달랐을까. 국정상황실장 출신의 윤건영은 "공직 사회는 에이스 몇 명이 끌고 간다"면서 "루틴은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잘한다"고 지적했다. "스팟(돌발 업무)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리더십과 리더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임종석(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런 말을 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퀴어퍼레이드처럼 일정 규모 이상 인파가 모일 것 같으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인파를 얼마나 예상하냐, 지하철 무정차는 몇 군데 할 거냐, 서울시가 경찰에 협조도 요청해 경찰 배치하고 예산 지원도 하고. 민간 행사라 해도 그만한 행사인지 인지 못 했다면 부작위의 책임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1조5000억 원을 들여 경찰청과 소방청, 해경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등 300개 이상의 유관기관이 동시에 소통할 수 있는 재난안전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이태원 참사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정혜승은 "위기 관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위기관리 센터를 비롯해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전 대통령)도 확실히 윤석열과는 달랐던 것 같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이 여러 차례 묻는다. "기름 확산 막을 수 있습니까." 청장이 비용 문제 등등 엉뚱한 답변을 하자 노무현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필요 이상 많은 자원을 동원해 비용 낭비가 생겨 과잉 방어 소리를 듣더라도 총동원해야 합니다. 안 되면 외국 자재를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나중에 배상을 받을 것은 법대로 받으면 되고, 그 이상은 정부 지원 예산으로 처리할 것입니다. 비용 받느냐 못 받느냐를 계산해서 장비와 인력 투입을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어선을 다 동원하십시오. 펜스가 시원찮으면 두 벌 치고 세 벌 쳐서, 중국이나 일본에도 비행기를 보내서 성능 좋은 펜스를 빌려오든 사오든, 어떤 경우에도 여기서 더 확산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총동원하십시오.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노무현은 확실하게 권한과 면책 범위를 지정하고 위임했다. 일을 시키는 방법을 알았다.
▲ [사고대처의 정석] 태안 기름유출 당시 노무현 대통령 ⓒ YTN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지낸 박두용의 진단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일깨운다.
"정상적인 조직이나 정상적인 체계에서 정상적인 인력이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3시간 전부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신호가 있었지만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거나 이미 예견된 사고라는 사후 확증편향은 이것 때문에 (또는 너희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식의 원인 확증편향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원인을 찾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치명적인 독이 된다."
"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고장난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혜승은 "영혼 없는 공무원 탓은 이제 그만 하자"고 제안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게 당연할 뿐더러 그게 맞다"는 고위 공직자의 말도 있었다. 공무원들은 시키는 대로 한다. 시키는 일을 잘 하게 하기 위해 꼼꼼하게 현안을 점검하고 지시하고 여러 단계의 회의를 하는 것이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혜승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단순히 대통령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고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해서 발생한 사고도 아니다. 정치의 실패고 정부의 실패다.
"신고가 들어왔을 때 기동대를 이쪽에서 빼서 이쪽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라면 그걸 누가 결정할 건가. 결국 누가 판단을 하고 그 책임을 질 거냐의 문제가 된다. 이런 걸 위기관리 센터에서 취합해서 판단하고 지시하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참여정부 때는 위기관리 센터를 비서관급으로 만들었는데 이명박 때 행정관급으로 낮췄고, 박근혜 때는 뭘 했는지 모르겠고 문재인 때 비서관급으로 다시 높였다. 그때는 뭔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일이 터졌을 때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장관이 언제라도 전화를 받고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위기관리 센터 사람들을 거의 다 갈아치웠다고 들었다.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벙커도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했다. 어디선가 구멍이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아주대 교수 강명구는 공무원이 영혼없는 철밥통을 벗어나려면 두 가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첫째, 중앙집권화 대신 분권화로 가야 하고 둘째, 자율성을 확보해줘야 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뭐가 바뀌느냐고 묻는데 안전에 문제가 생기고 건강보험이 흔들리고 그게 정치다. (중략) 어쩌다 투표 한 번 하고 효능감 떨어지는 선거 제도에 툴툴거리는 대신 서로 연결되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