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남기는 시민2022년 10월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한 시민이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내가 퇴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상상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빵을 만드는 사람인데 빵을 만들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산재사망사고 뉴스를 접해도 "아이고.. 쯧쯧..."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게 전부였지, 어느 한 사람이 어떻게 집에 돌아가지 못한 건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그 노동환경은 어떠했던건지, 유가족들이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그 죽음 이후 관심가질 생각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면서 산재 관련 1인 시위 피켓도 들고 집회도 참가했지만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는 저에게 막연한 숫자였지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 2018년 12월, 한 발전소에서 젊은 노동자가 끼임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늘 그랬듯 "아이고... 쯧쯧..."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까만 분진이 미친 듯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는 작업장 모습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저런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숨은 쉴 수 있나? 앞도 안보이는 저 캄캄한 곳을 혼자 들어가다니 무섭지 않나? 그리고 그 퇴근하지 못한 젊은 노동자가 회사에 입사하며 부모님과 축하하는 모습, 쑥스러워하며 다짐을 이야기하는 모습, 그런 자식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추운날 길거리로 나와 자식을 앗아간 회사를 상대로 처절하게 싸움을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저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업종은 달라도 우린 다 똑같구나...
김용균씨 사고 이후 여러 자료와 기사들을 찾아보며 든 생각이 있습니다. 외주화 되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자리, 같은 노동을 하지만 하청, 파견이란 딱지를 붙여 차별하고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일자리, 그로 인해 같은 일을 해도 제대로 돈도 못 받는 일자리, 인력 부족으로 둘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해야하는 일자리, 그래서 다치고 아파도 쉬지 못하는 일자리, 동료가 일하다 사고를 당해도 회사 눈치를 보며 문제 제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파리바게뜨에 입사하는 줄 알고 근로계약서를 쓰러 간 사무실은 양재에 있는 SPC본사가 아닌 신도림역 뒤편 아주 오래된 건물의 낡은 사무실이었습니다. 큰 회사 사무실이 왜 이리 후줄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면서도 내가 하청 용역회사에 입사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면 자랑스럽게 '파리바게뜨 제빵사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와 파리바게뜨? 그럼 대기업 다니는 거네요?'라는 질문이 꼭 따라 붙었고 그때마다 SPC소속이 아닌 협력사 소속이라고 대답하면 백이면 백 그 특유의 뉘앙스로 '아아~ 용역?'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리바게뜨에서 일하고 있지만 SPC파리바게뜨 소속이 아니라는 게 뭐가 문제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점점 소속 회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땐 불법파견이 뭔지도 모르고 원하청 구조도 잘 몰랐지만,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내 일자리가 그리 좋은 게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일하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진급도 했습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주휴가 뭔지도 모르고 2주 연속 일을 하고, 연장수당은 커녕 점심 밥도 못 먹고 일해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사회생활 원래 이런 거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