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자료사진).
픽사베이
유튜브에선 노인들의 고충을 모르는 자식들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인 '니 새끼 니가 봐'라는 아마추어 래퍼의 힙합이 화제가 됐다. "자신들의 아이는 자신들이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전문가의 의견에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당연한 듯하면서도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니,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엄마 다운 꿈이다. 꿈을 이루셨으니 언제나 후회 없는 삶이셨다. 최선을 다한 삶. 그런 강인하신 엄마가 너무 슬펐다는 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글. 어떤 글인지 몹시 궁금했다. 글 쓰는 작가라면 대부분은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감동을 주는 글.
얼마 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 글은 감동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글은 써본 적도 없고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했다. 감성에세이가 아닌 생활기사라 그렇다며 뜨악해했다. 생활기사라도 감동은 있지 않은가 반문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해도 '감동'이란 단어가 계속 신경 쓰였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감동이 제일 어려운 것이므로. 어쩌면 글의 진정한 목적은 '감동'인지 모른다는 꿈을 꿔본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길
오래전, 엄마가 장부책 한 면 전체에 끄적여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알아볼 수 없는 글. "지금 내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어 네가 나중에라도 알아주렴"이라며 엄마는 너무 속상해서 감정을 글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 내용은 제대로 알 수 없는 글이지만 마구 휘갈려쓴 '글씨'만으로도 당시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상했다. 먹먹했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 했던 마음만으로도 울컥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한글을 몰라 쓸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 엄마도 배웠다면 어쩌면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엄마도 환경이 좋았다면 극장에서 영화 한편쯤은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영화를 본 적 없지만 내가 영화를 볼 수 있게 용돈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매주 혼자서 영화 한편씩을 봤다. 나처럼 영화를 자주 볼 친구가 없어서. 엄마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만원을 달라 하면 이만 원을 주신 분이다. 항상 원하는 돈보다 더 주신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다. 왜 항상 더 주시냐고. 답은 간단하셨다. 모자라면 혹 나쁜 짓을 할까 봐. 엄마는 힘드셨지만 나는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 수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너도 나도 자아 찾기가 유행인 시대. 자식 잘되는 게 목표이자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없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그게 나'라고 한다. 모든 삶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엄마에게도 분명 소녀의 꿈이 있었으리라. 첫눈이 왔다고 전화를 주시고, 슬픈 시를 듣고 감정을 공유하는 감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 이제 엄마도 엄마 삶을 살아. 그 누구도 아닌 엄마 자신을 위해서. 늦었지만. 아니 이제라도 앞으로 남은 삶은 꼭 그렇게 살아."
그렇게 당부하곤 통화를 끊었다. 지금 창밖엔 흰 눈이 흩날린다. 눈이 온다고 다시 전화를 걸고 싶지만.
통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슬펐다는 어린 소년 의 '시'를 찾아보았다. 엄마가 느꼈을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옮겨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비는 매일 운다 / 나도 슬플 때는 /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비야 / 너도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거니?
하지만 / 비야 너와 나는 / 어차피 웃음이 찾아올 거야
너도 힘내!
(민시우, '슬픈 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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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꿈은 뭐였어?" 엄마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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