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내 이야기가 가장 좋은 시다>
어린이도서연구회진주지회
술, 멈춰!
조수민(중학교 2년)
우리 아빠는 요즘 1일 1술을 한다.
그래서 이제 아빠가 외식이나 계 모임에 간다고 하면
미리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 엄마가 또 밤에 아빠 데리러 가겠구나.'
전화로는 안 와도 된다면서
조금 뒤에 해롱해롱한 목소리로 연락이 온다.
"택시 타고 내렸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라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 오늘도 또" 하면서
아빠를 데리러 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엄마, 아빠가 과연
어떤 모습에 결혼했는지 궁금해진다
(사)어린이도서연구회진주지회(지회장 석선옥)와 경남혁신아파트 10단지에 위치한 너나마루작은도서관(관장 정현정)이 펴낸 동시집 <내 이야기가 가장 좋은 시다>에 실린 작품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진주지회, 너나마루작은도서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원으로 지난 10월, 어린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며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 어린이시 쓰기 교실을 열고 동시 43편을 담아 이번에 책을 펴낸 것이다.
이들은 어린이가 마음을 풀어내고 어른들이 귀 기울여 줄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보고 먼저 "시랑 놀자"를 진행했다. 김영주 강사가 "동시, 알고 나면 친구"에 대해 강의하고, 최종득 시인이 어린이 시쓰기 교실을 진행했다.
최종득 시인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물론 어른들도 힘든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른들은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며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그런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이런 아이들 가슴속에 있는 미움과 불만을 터뜨려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어 "자기 가슴 속에 있는 응어리진 미움과 불만을 제때 제때 터뜨려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힘을 가지게 하고 싶었고 이런 미움이나 불만을 터뜨려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시쓰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시쓰기는 초등 1-2학년반과 초등 3학년~중등 2학년반으로 나눠 진행했으고, 관심있는 학부모도 참관하도록 했다.
어린이들은 '내 이야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우리 식구', '친구, 주변 사람' 등의 주제로 시를 쓰고, 각자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한 아이들은 생활 속 불만을 마음껏 터뜨리면서도 '장난 아빠'라고 아빠 별명을 짓기도 하고 '엄마가 옆에만 있어도 좋다'고 애정을 드러내었으며, 자세히 보니 안보이는 게 보인다고 꼬마 시인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종득 시인은 "가장 좋은 시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자기 이야기 / 너나마루 어린이 시인들의 이야기가 / 고스란히 담겨 가장 좋은 시집이 되었다 / 보는 사람을 울리고 웃길 / 세상을 울리고 웃길 단 하나의 시집"이라고 했다.
어린이 시쓰기를 참관했던 한순녀 학부모는 "아이들은 다 시인이요, 시가 생활 속에 감동과 마음을 표현한다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들이 주는 감동에 뭉클했다"라고 말했다.
장난 아빠
박재령(초등학교 2년)
아빠는 맨날 장난만 치신다.
"우리 씨름하자!"
"우리 탕후루 해 먹자!"
"우리 잠자리 잡으러 갈까?"
아빠는 맨날 장난만 치신다.
제발 하루만이라도
아빠가 장난을 안 치면 좋겠다.
그래서 별명이 장난 아빠!
우리 엄마
최연서(초등학교 3년)
우리 엄마 냄새는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난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화장품 냄새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한테서 떠났다.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 엄마는 노인재가복지사가 되기로 했다.
엄마가 일하고 왔을 때 노인들 냄새가 풍긴다.
노인복지센터에 갔다 오고 나면 나는 냄새다.
노인들 때문에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속상해서 저 멀리 떠난 게 분명하다.
노인들 싫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빼고 싫다.
화장품 냄새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