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지난 2019~2020년 사이 일했던 미용실의 원장이 '인턴' 직원들에게 오전 9시 40분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했던 메시지를 찾아 보여주고 있다.
김성욱
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의 첫 실태조사 이후 프리랜서 계약으로 위장한 미용업 종사자들의 근로자성 문제가 대두됐지만, 10년이 지나도록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 3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두발 미용업 종사자는 총 15만 1800여 명에 달한다.
이씨는 현재 수천 만원 빚을 내 충남 아산시에 미용실을 차리고 종업원 없이 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인턴 형식으로 착취당하는 걸 더 견딜 수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제 숍을 냈다"고 했다. 이씨를 지난 11월 30일 아산시에서 만났다.
- 2019년 B미용실과 맺은 계약서를 보면 '프리랜서'라고 적혀있다.
"표준근로계약서 뒷면에 '프리랜서 근무'라고 적어야 했다. 원장님이 종이를 주면서 그대로 베껴 쓰라고 하셨다. 당시 상황을 녹음까지 해두셨던 것 같더라. 실제론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프리랜서면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매장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원장님의 지시와 통제 속에 이뤄졌다.
정말 창피한 얘긴데, 오죽하면 화장실도 제 마음대로 못 갔다. 매장이 바쁘면 원장님은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이따 가라고 하셨다. 하도 참아서 방광염이 생겼고 심해져서 혈뇨까지 갔었다. 생리대 갈 시간도 없었다. 하루는 남성인 원장님께 '제가 오늘 그날이라 화장실을 좀 자주 가야 될 것 같다'고 미리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따로 부르셔서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냐, 화장실 가고 싶으면 더 빨리 움직이라'고 하셨다. 이런 게 프리랜서인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4대 보험은 당연히 안 됐고 계약서에 식비 30만원, 교육비 50만원이 공제된다고도 써야 했다. 그땐 법을 몰라서 이게 이상한 계약서라는 걸 몰랐다. 설사 부당한 계약서라는 걸 알았다 해도 그때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출산 후 육아와 함께 찾아온 경력 단절, 그리고 나이가 좀 있다는 이유로 다른 미용실들은 취업이 어려웠으니까. 원장님은 대놓고 이런 말까지 하셨다. '아줌마들은 배우고 싶어도 취직이 어려워서 90만 원만 줘도 일해. 왜? 간절하니까.'"
- 실제로 월 90만 원만 주는 경우도 있었나.
"있었다. 저는 그래도 과거 경력이 있다 보니 월급이 10만원씩 두 번 정도 오르긴 했지만, 저를 제외한 나머지 한 명 인턴 자리는 1년 동안 3명이나 바뀌었다. 그 중 한 명은 20대 중반의 아이 둘 가진 애기 엄마였고, 나머지 두 명은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었다. 40~50대 여성들이 뒤늦게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이유는 거의 다 똑같다. 남편 퇴직이 가까워오면서 안정적인 소득을 궁리하다 미용 일을 생각하는 경우다. 노후 대비용이다.
인턴으로 들어오셨던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면접을 보러 처음 숍에 오셨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면접을 끝낸 아주머니가 매장 밖으로 나가자 원장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월급 90만원만 주기로 했다'고. 아줌마들은 이만큼만 줘도 된다고. 나이가 많아서 어차피 딴 데 갈 곳도 없다고. 그런 간절함들을 악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숍에서는 부당하게 프리랜서 계약서를 써놓고는 변호사 등을 통해 공증까지 받는다고 들었다."
"남편 퇴직 걱정에 미용실 '인턴' 기웃대는 40~50대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