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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기폭제 김주열 시신 인양... 어부 아버지는 트라우마 시달렸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어부 고 김경영씨 진실규명 결정... 딸 금이씨 "국립묘지 안장 원해"

등록 2023.12.05 17:44수정 2023.12.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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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오른쪽), 김창호 회장(왼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오른쪽), 김창호 회장(왼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윤성효
 
[기사수정 : 6일 오전 10시 37분]

"눈물이 난다."
 
김금이(73, 경남 창원)씨가 5일 오전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점'이자 '4월혁명이 시작된 곳'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회장 김창호)는 "김씨의 아버지 때문에 4월혁명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인양한 고 김경영(당시 67세)씨는 그녀의 아버지다. 고인의 딸은 지난 11월 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아버지가 '3·15의거 시위 참여'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후, 이날 다시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홍합 채취하다 시신 배 위로... 충격적이고 힘들었을 것"
 

3·15의거는 이승만자유당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창원마산에서 1960년 3월 15일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이날 옛 마산상고 입학 예정이던 김주열 열사가 행방불명됐는데, 그해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때마침 마산 앞바다에서 홍합을 채취하고 있었던 김경영씨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인양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시민들은 "김주열을 살려내라"며 시위를 벌였고, 이를 4·11항쟁이라 부른다. 이는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이승만 하야로 4월혁명의 염원이 이뤄졌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2022년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권찬주) 등과 함께 김경영씨의 진실규명 신청했다. 그 결과 권찬주 여사를 비롯해 기념사업회에서 신청한 다른 사람들은 당시 함께 진실규명 결정됐다.

고 김경영씨는 신청인 자격 문제로 신청인을 변경해 조사를 진행했고, 진실화해위가 조사과정에서 딸 김금이씨를 찾는 데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다가 어렵게 찾아내서 참고인 조사 과정을 거쳐 이번에 진실규명 결정이 난 것이다. 다음은 당시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의 설명이다.
 
"4월 11일 오전 11시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마산경찰서 수사계장이 부둣가 초소 근무 중이던 군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사계장은 시체가 떠 있는 곳 가까이 거룻배를 발견하고 시체 인양을 부탁했다. 그 배에선 김경영씨가 홍합 채취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경영씨는 김주열 열사의 끔찍한 시신을 자신의 배 위로 끌어 올렸다. 무척 충격적이고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유명인사가 돼 최초 발견자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김경영씨는 그 일 이후에 시신 인양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업을 이어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시신 인양 후 김경영씨는 밤마다 '김주열이가 날 부른다'며 악몽을 호소했고,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결국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념사업회는 "김경영씨의 시신 인양 작업이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잠깐 시민의 관심이 됐지만, 이후 그의 거룻배와 김주열 시신사진만 남고 그는 잊혀진 인물이 됐다"라며 "시신인양작업이 4월 혁명에 끼친 영향과 이후 그 개인과 가족들의 삶이 불행해졌다는 점에서 합당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 표창장도 받아... 아버지 국립묘지 모시고 싶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왼쪽), 김창호 회장(오른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왼쪽), 김창호 회장(오른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윤성효
 
기념사업회는 2022년 5월, 김영경씨 진실규명 신청을 위해 그의 가족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김주열 시신 인양 어부 김경영씨의 딸 김금이(72)씨를 찾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신문 광고를 낸 것.

딸 김금이씨는 당시에 신문 광고가 나온 줄 몰랐다고. 이번에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난 뒤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며 그동안 못다 했던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인양한 뒤 힘들어 하셨고, 거의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셨다. 지금으로 보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이라며 "시신 인양하고 나서 덕본 거 없고, 손해만 봤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털어놨다.
 
이후 정부가 김경영씨에게 대통령 표창과 기념메달을 수여한 사실도 증언했다. 김금이씨는 "아버지께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하고 나서 정부로부터 받은 거라고는 '대통령 박정희'라고 선명하게 찍힌 표창장과 메달이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김경영씨는 1965년 5월 9일 사망했고, 그의 주검이 발견된 장소는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였다.
 
김금이씨는 "당시 이웃사람들이 '금이야, 아버지가 부두에서 자고 있더라'라고 해서 급히 손수레를 끌고 모시러 갔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당시 의사는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했다"라며 "아버지 장례 때 대통령 표창장을 함께 불태웠고, 메달은 목걸이로 쓰다가 잃어버렸다"라고 덧붙였다.
 
고인의 묘소는 마산 만날고개에 있다. 김금이씨는 "며칠 전 진실화해위 실무자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이 났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고, 아직 결정문을 받지는 못했다"라며 "결정문을 받으면 아버지를 찾아가서 큰절을 올리고 싶다"라고 했다.
 
아버지 없이 사남매가 힘들게 살아왔다고 한 김금이씨는 소원이 하나 있다. 아버지를 국립3·15민주묘지 또는 국립4·19민주묘지로 이장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바라는 것은 아버지를 국립묘지로 모시고 싶은 것뿐이다"라며 "해마다 사람들이 3·15만 되면 김주열 열사를 떠올리지만 우리 가족의 아픔도 생각해 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은 "따님을 찾기 위해 신문 광고도 냈는데 연락이 없길래 돌아가신 줄 알았다. 지금이라도 연락이 돼 다행이고, 내년부터 열리는 4·11민주항쟁 기념행사에 유족들을 초대해서 함께 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창호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은 "박정희 정부 때 김경영씨에게 대통령 표창장과 메달을 수여했다는 기록을 찾아 고인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나서겠다"라고 약속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오른쪽), 김창호 회장(왼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했던 어부 고 김경영(1965년 작고)씨의 딸인 김금이(오른쪽 두번째)씨가 김주열기념사업회 김영만 고문(오른쪽), 김창호 회장(왼쪽)과 함께 5일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찾았다.윤성효
  
 김주열열사 동상.
김주열열사 동상.윤성효
#김주열열사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진실화해위 #김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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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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