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사진은 키신저 홈페이지(https://www.henryakissing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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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에 출판된 <키신저 재판>은 이러한 물음에 약간의 해답을 준다.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키신저는 전범이라며 정치적인 잘못을 떠나 당장 재판장에 세운 뒤 공소장에 나열할 수 있는 죄목만 6가지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히친스가 제시한 죄목 6가지는 ▲인도차이나 민중에 대한 대량 학살 계획 입안 ▲방글라데시에서의 대량 학살 공모 ▲칠레의 민주적이고 합법적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지원 ▲키프로스의 민주적이고 합법적 대통령에 대한 살해 계획 관여 ▲동티모르 학살 선동 및 유도 ▲반독재 언론인 납치·살해 계획 관여 등이다.
이러한 히친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키신저는 범죄자임이 틀림없다. 저자 히친스는 자신의 주장을 다양한 문서와 인물의 증언을 통해 거짓이 아님을 책에서 샅샅이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키신저는 그 시작부터 수많은 이들의 피를 묻힌 사람이었다. 키신저가 미국 정부의 외교 실세로 등극한 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고 나서부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상을 준비한 민주당의 린든 B. 존슨 행정부의 선거 전략을 키신저가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닉슨에게 누설했다.
이 사실을 안 공화당은 남베트남에게 평화협상을 거절하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꼬드겼고 평화협정은 무산됐다. 그렇게 베트남전쟁은 4년을 더 이어갔고 남베트남은 좋은 기회는커녕 패망했다. 그 4년 동안 미군 사상자는 3만 명이 넘었고 같은 기간 베트남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은 미 의회에 따르면 3백만 명 이상이다.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키신저는 중립국인 캄보디아와 버마(현 미얀마)를 배후기지로 지목하고 폭격을 지시했다. 미 합참의 전략폭격전술 전문가인 시턴 대령은 키신저와 폭격 문제에 대한 깊게 협의했다고 진술했다. 국무부 직원 200여 명이 키신저의 폭격 정책에 항의하는 서한에 서명해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에게 보냈지만 키신저를 막지는 못했다. 1년 2개월 동안 미군은 캄보디아에만 3600차례가 넘는 폭격을 가했다.
제3세계 쿠데타에 적극 개입 정황
이외에도 키신저는 당시 중국과의 외교 채널이 파키스탄을 통했다는 이유만으로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선거 과정 속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해 침묵하고 더 나아가 학살에 경고해야 한다는 국가안보협의회 내부 주장을 강력히 반대했다.
책에 따르면, 키신저는 학살의 주범인 야하 칸 장군에게 "신중하고 빈틈없이" 행동해서 고맙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키신저의 언행에 오죽하면 당시 다카 주재 미국 총영사였던 아처 블러드조차 "미국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학살극의 공범"이라고 비난했겠는가. 이때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