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계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을 맛보고 있다. 오른쪽 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 대통령, 박형준 부산시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2023.12.6
연합뉴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물을 잔뜩 먹은 윤 대통령이 부산을 찾았다. 그런데 뉴스에 보도된 것을 보니 윤 대통령 주변에 이재용을 비롯하여 한국의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 들러리를 서서 떡볶이를 먹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재벌 총수는 왜 부산까지 쫓아가서 떡볶이와 빈대떡을, 그것도 차가운 시장바닥에 서서 먹어야 했던 걸까.
부산 엑스포가 만신창이가 되기 며칠 전까지도 <조선일보> 등은 "49대 51까지 쫓아왔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29대 119로 참패한 다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부도 언론도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러다 여론이 악화하니 마지못해 윤 대통령이 '부산 민심'을 달랜다고 달려간 모양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떡볶이 팔아주면 민심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심각한 '판단 미스'다.
세계 엑스포 개최지 발표 하루 전인 11월 28일에 방영된 KBS 특집 9시 뉴스 <부산 엑스포 유치하면, 경제 효과는?> 보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관련 연구기관들이 예측하는 부산 엑스포의 경제 유발효과는 61조 원. 생산 유발 효과 43조 원, 부가 가치도 18조 원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50만 명이 넘는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됩니다. 앞서 2010년 상하이 엑스포가 110조 원, 2015년 밀라노 엑스포는 63조 원의 경제 유발효과를 거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엑스포는 행사 종료 이후에도 경제적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엑스포를 위해 조성될 각종 인프라가 부산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과 부산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 역시 숫자로는 표현되지 않는 무형의 효과입니다."
이토록 거대한 경제 유발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산 엑스포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 B, 플랜 C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론 관련 장관 누구도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 대통령 옆에서 떡볶이를 열심히 먹어대며 대통령 한 마디 한 마디에 파안대소한 부산 시장도 별다른 말이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에 참석해 "부산의 숙원사업이자 대선 공약 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개항과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북항 재개발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면서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이를 추진할 범정부 거버넌스를 신속히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 윤 대통령이 한 발언이 못내 걸린다. 한 상인이 '엑스포 준비하느라고 고생 많으셨죠?'라고 묻자, 윤 대통령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엑스포 전시장 세울 자리에 외국 투자 기업들 많이 들어오게 해서 부산 더 발전시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엑스포 전시장 세울 자리에 외국 투자 기업들 많이 들어오게 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차라리, 유치를 실패해서 다행인 건가
원래 부산 엑스포 부지로 예상된 땅은 부산 북항 주변의 343만 제곱미터 지역에 있다. 원래 부산항 재개발 1, 2단계 지역으로 예정되어 있던 땅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여 1단계 구역은 문화 공연을 위한 무료 구역으로, 2단계 구역은 유료 전시회장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다른 나라가 완전히 새로운 부지에서 신선한 계획으로 세계 엑스포를 준비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사실 부산 북항은 한때 세계 3대 컨테이너 항이었다. 그러나 북항 자체가 작아 신항에 그 영광을 내주고 말았다. 게다가 중국과의 경쟁에 밀려 부산항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져 이제 과거의 빛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한국 자체의 경제가 침체하면서 무역 물동량이 줄어들어 부산의 경제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국제 엑스포를 부산 경제를 살리는 기회로 삼아볼 요량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대로, 부산이 가망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지만, 부산항 재개발 1, 2단계를 원래대로 시행하면 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느닷없이 엑스포 전시장 세울 자리에 외국 투자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말한다. 국민이 모르던 깜짝 계획이 있단 말인가?
해양수산부 고시 제2023-24호에 따라 변경한 2023년 2월 17자 <부산항 북항 단계 재개발사업 사업계획 변경>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나온 1단계 계획을 자세히 보면 해외 기업이 투자할 만한 시설 확충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연안 여객 터미널과 유람선 부두를 건설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그것도 돈이 되는 크루즈 부두는 1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국제 여객 부두 13개 연안 여객 부두 2개, 연안 유람선 부두 12개가 전부다.
게다가 크루즈 부두만 겨우 10만 톤의 배가 접안할 수 있을 뿐, 나머지 부두는 최대 2만 톤급이다. 현재 돈이 되는 최고급 크루즈 선은 20만 톤이 넘어간다. 연안부두는 1만 톤급이고. 1차 재개발 사업의 총사업비는 늘어나서 2조 8천억 원이다. 그런데 세계 엑스포를 이곳에서 개최하여 무슨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구체적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북항 2차 재개발 계획 지역에 국제 박람회 본 건물을 짓고 나서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한다는 말인가?
한편으론 차라리 부산 엑스포가 안 열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6000억에 가까운 예산을 들이고, 29표밖에 얻지 못한 것은 분명히 외교 참사다. 국정 조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 부부만이 아니라 외교부와 국정원 그리고 부산시가 세금을 낭비한 것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고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아무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 언론도 조용하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이, 재벌을 시장에 끌고 가서 좌우에 세워놓고 떡볶이와 빈대떡을 '친히' 나누어 주고 시장통에서 서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종의 '쇼'를 벌였다.
윤 대통령이 기억해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