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날 저녁 밥상에 올라온 텃밭에서 키운 고구마와 김장김치.
용인시민신문
아버지는 김장하기 며칠 전에 지금은 보기 힘든 큰 항아리 몇 개를 햇볕이 적당히 드는 곳에 묻었다. 항아리 묻은 곳에 작은 움막처럼 기다란 나뭇가지와 짚으로 김치 광을 지었다. 그 김치 광은 친구들과 숨바꼭질 할 때 숨는 장소로 최고였다.
우리 집 김장 준비는 봄부터 시작됐다. 봄에 고추 모종을 심어서 여름 내내 긴 장마와 지루한 실랑이를 해가며 붉어진 고추를 말렸다. 둥근 호박을 일찍 점찍어 두어 가을에 노랗게 익으면 김장 소용으로 보관해놓았다.
요즈음은 늦더위가 심해 8월 하순경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 김장배추를 심는다. 아침마다 벌레를 잡고 무름병이나 진딧물에 걸릴까 늘 노심초사해야 했다. 여름 막바지에 쪽파를 심었는데, 추석에 먹을 것과 차등을 두어 날씨를 봐가며 김장용은 보름쯤 뒤에 심었다.
전통 오일장날이면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품목을 바꿔 파는 할머니에게 쪽파 씨를 샀다. 오천 원어치의 양을 작은 바구니로 푹 퍼서 검은 봉지에 담고는 큰 주먹으로 두어 번 덤을 주는 할머니의 인심은 우리 집 텃밭 빈 공간을 쪽파로 채우고도 남았다.
할머니는 뿌리 쪽과 작은 싹은 꼭 가위로 자른 뒤 심으라고 당부했는데, 쪽파를 잘 기르는 할머니의 비결을 그대로 따라서 심었다.
갓도 텃밭 한쪽에 심었고, 시장에서 산 마늘은 시간 날 때마다 껍질을 까서 갈아놓았다. 천일염도 여러 포대를 사서 미리 간수를 빼놓았다.
김장 전날 배추를 뽑아 점심을 먹은 후 소금에 절였다. 전원에 살면서 배추 절이고 씻는데 선수가 되었다. 배추 겉잎은 무쇠솥에 삶아서 한 번 먹을 만큼씩 비닐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었다. 우거지국을 끓일 때 요긴하게 쓰인다.
김장하는 날엔 표고버섯, 다시마, 북어 대가리, 멸치, 사과와 배 등을 끓여서 육수를 내고 찹쌀죽을 쑤어서 식혀 놓았다.
일찌감치 사놓은 생강은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을 찾고 뒤늦게 까고 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호박 삶은 것과 연시 그리고 매실로 만든 청이 설탕을 대신한다.
시중에서 파는 멸치젓갈과 새우젓도 준비하고, 생새우도 친정어머니처럼 듬뿍 넣으려 넉넉하게 사 두었다.
아침 일찍 배추를 씻어 물을 빼는 동안 동네 마트에서 서비스 차원으로 썰어준 무채에 준비한 모든 재료를 넣고 속을 버무렸다. 배추에서 노란 잎을 따서 버무려놓은 무채를 넣어 간을 보았다. '바로 이 맛이야!'
장기간 보관할 음식이니 간은 보통 때보다 조금만 더했다. 김장하는 날 수육이 빠지면 서운해서 힘들었지만 한 접시 준비했다. 올해 김장김치도 성공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먹거리를 위해 애써준 텃밭에 고맙다는 인사로 막걸리 한 사발을 뿌려주었다.
'텃밭의 흙아, 한겨울 편히 쉬거라. 부지런한 우릴 만나서 고생 많았어~'
권희숙(협동조합 숲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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