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계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을 맛보고 있다. 오른쪽 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 대통령,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수석부회장. 2023.12.6
연합뉴스
내 일터인 학교의 교사들 중에도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때로는 학생들에게 교사 실명을 건너 듣는 때도 있다. 부동산은 나름 먹고 살 만한 경력 교사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에는 어김없이 교사들이 분양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식도 교사들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주식과 부동산(아파트)은 복권과 같다. 기본적으로 돈을 낸 사람들끼리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이다. 특히 경제 상황이 침체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걸 '투기'라고 보고 당연히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많은 이익을 볼수록 다른 이는 그만큼 손해를 보며,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생계비 걱정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교사들의 주식과 부동산 '투자'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파장은 짚어볼 문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생활하는 교사의 윤리적 책임이 첫 번째 문제다. 두 번째,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미치는 비교육적 영향이 큰 문제다.
교사가 교실에서 마주하는 학생들과 보호자 상당수는 교사보다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비수도권일수록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에 다가설 엄두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부자'를 향한 교사의 관심은 의도와 상관 없이 존재 이유인 학생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삼인칭 아닌, '일인칭 가난'의 존재 의미
"나는 가난한 내 삶을 지독하게 원망했다. 왜 하필 이런 가족일까, 왜 하필 이런 방구석일까, 왜 하필 딸일까, 왜 하필 1997년에 태어났을까, 왜 하필 부산이었을까, 왜 하필 나일까. 왜, 도대체 내가 왜, 가난을 베개로 베고 비참함을 이불로 덮어야 할까. 가난은 이유 없는 벌이다."
(책, 69쪽)
내가, 우리가 만나는 어린 사람들 가운데 글쓴이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했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문제'로 보는 데는 소홀했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라는 말로 자기 최면을 걸며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어두운 그림자와 맞닥뜨렸던 "어제를 참고", 오늘을 살아내려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집이 지긋지긋해서 나왔다는 담이에게, 잠들어 있던 내 머리맡에 아빠가 식칼을 들고 서 있었다는 지나간 이야기를 했다. OO주공(아파트) 전수 조사를 하면 미수에 그친 살인이 평범할 거라고도 했다. 실실 웃던 담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나아졌다며 털고 일어섰다. … 우린 이렇게 흉터를 자랑하며 생존 신고를 했고 연대의식을 다졌다. … 이런 일화는 나와 담이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제를 참고 오늘을 살려 걸음을 재촉하는 중학생은 많았고, 많을 것이다."
(책, 89쪽)
청소년 빈곤 연구자 강지나는 한국이 다른 OECD 국가보다 공공영역 지출이 매우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2023, 돌베개, 94쪽). '사회복지'를 민간부문에 맡겨 보편적이고 제도적 시스템이 아닌 '시혜적 시선'을 담은 도움 정도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난'은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 아닌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94~95쪽).
"아르바이트 하나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한 달에 많아야 30만 원을 벌 텐데, 이 돈에서 10%씩은 계절학기 기숙사비로 떼어놓고, 휴대전화 통신비 3만 3,000원(이마저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통신비가 감면되어 감당할 수 있었다), 학교-아르바이트 매장을 오가는 교통비, … 먹고 싶은 것을 어쩌다 한 번 먹을 비용까지 따지면 30만 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최소 두 개, 최대 네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하며 (장학금 성적 기준을) 맞추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위의 책, 38쪽)
"돈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국고에서 나오는 장학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나오는 것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나는 시험 기간에 사흘이고 나흘이고 밤을 세워 공부했다." (책, 40쪽)
국가적 복지 체계 부족은 가난을 '남의 일'로 여기는 문화를 만든다. 이런 문화는 필요한 사람들의 입장과 거리가 먼 제도를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위 인용 글 사례처럼, 생계 때문에 출석도 쉽지 않은 학생들에게 우수한 성적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장학 제도가 생기고 유지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복지는 철저히 신청주의다." (책,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