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 지하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의 월권행위를 알리는 피케팅에 참여 중인 홈리스야학 학생. 피켓에는 “홈리스 여러분!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중앙지하도는 중구청 소유 공공부지입니다.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홈리스행동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올해에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서울역 광장 지하에는 옛 서울역사와 상업용 건물인 '서울스퀘어'를 연결하는 지하도가 있습니다. 해당 지하도의 공식 명칭은 '서울역 앞 지하보도'로 서울시 중구청이 관리하는 지하도입니다. 문제는 관리 주체도 아닌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이 지하도를 사유화하고, 지하도에 머물고 있는 홈리스들을 부당하게 퇴거시키는 일들이 올해 계속해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지하도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자체에 귀속된 '공공시설물'이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서울스퀘어는 해당 지하도를 사적으로 통제해 왔습니다. 보안직원들은 지하도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홈리스들이 서울스퀘어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쳐 '영업을 방해한다'며 이들을 지하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서울스퀘어 출입문을 폐쇄하는 시간인 오후 10시가 되기 전까지 다른 곳에 있다가 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멋대로 해당 공간을 관리해 왔습니다. 무릎을 굽히기 어려워서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던 한 홈리스에게는 "의자 채로 옮겨 드려요?" 따위의 언행을 일삼으며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보안직원들의 행위는 명백한 월권행위였습니다. 지하도가 서울스퀘어 출입자의 편의, 그리고 그에 따른 서울스퀘어의 운영 수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공공시설물인 '서울역 앞 지하보도'를 민간시설인 서울스퀘어가 배타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으며, 더욱이 홈리스들을 '영업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 통제할 권한 또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공에도 직무 유기의 책임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하연결통로 설치 및 유지관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든 유형의 지하연결통로는 공적‧공공적 용도로 사용되어야 하며, 사적 이용은 공공적 이용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의 월권행위는 공공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시는 지하도의 관리 주체가 서울시 중구청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리스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서울스퀘어 관리 구간"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지하도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을 넘어, 무엇보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물에서 홈리스가 퇴거를 당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홈리스를 공공장소에서 퇴거시키는 일은 이들이 그러한 장소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일순간에 지워버립니다. 이들을 밖으로 내몬다고 해서 홈리스 상태를 유지‧심화시키는 구조는 바뀌지 않으며, 이와 같은 퇴거 조치는 오히려 이들을 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몰아 홈리스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홈리스의 안전과 권리가 당연시되려면
홈리스가 공공장소에 머물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오히려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에 실패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공공은 이에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홈리스를 탄압하는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광장을 이용하는 다른 시민들의 불편과 안전을 이유로 홈리스들의 물품은 줄곧 폐기되어 왔습니다. 이들을 지원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이 도리어 앞장서서 물품 철거를 단행한 일도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노숙인시설에서는 확진 환자를 별도로 격리하지 않은 채 방 하나에 십수 명의 입소자를 구분 없이 격리한 후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였습니다. 2021년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는 역내 시설물을 동파 등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이유로 지하도를 폐쇄해 한겨울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던 십수 명의 홈리스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