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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가 편한 곳이 모두에게 편한 곳이다"

[2023 홈리스 추모제 기획연재 2] 공존할 권리

등록 2023.12.18 13:49수정 2023.12.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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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12월 4일, 47개 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2023 홈리스 추모행동’을 선포하였습니다. 전체 인구집단보다 4배 이상 높은 홈리스의 사망률, 최근 8년간 10배 넘게 증가한 거리노숙 경험자의 사망률은 홈리스를 추모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리킵니다.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추모행동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주거’, ‘추모’, ‘공존’을 키워드로 우리 사회, 정책이 바뀌어야 할 점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공공장소를 이용할 때 감시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수만 명이 오가는 광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자에 단지 앉아만 있는 것인데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홈리스들입니다.

홈리스들은 그간 수많은 곳에서 퇴거를 당했습니다. 2011년 서울역에서는 코레일의 '야간 노숙 행위 금지' 조치로 인해 수십 명의 홈리스들이 역사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2017년에는 서울시의 '서울로7017 고가 공원' 개발로 인해 서울역 지하도에서 생활하던 수십 명의 홈리스들이 잠자리를 잃었습니다.

같은 해 용산역에서는 공중 보행로의 신설로 역사와 인근 호텔이 연결되자 호텔 측 경비원들이 기존 보행로에 자리잡고 있던 노점상과 홈리스들을 내쫓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공 역사뿐만 아니라 광장, 도심 공원 등지에서도 홈리스에 대한 퇴거 조치는 그간 부지기수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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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지하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의 월권행위를 알리는 피케팅에 참여 중인 홈리스야학 학생. 피켓에는 “홈리스 여러분!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중앙지하도는 중구청 소유 공공부지입니다.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 홈리스행동

 
"자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올해에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서울역 광장 지하에는 옛 서울역사와 상업용 건물인 '서울스퀘어'를 연결하는 지하도가 있습니다. 해당 지하도의 공식 명칭은 '서울역 앞 지하보도'로 서울시 중구청이 관리하는 지하도입니다. 문제는 관리 주체도 아닌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이 지하도를 사유화하고, 지하도에 머물고 있는 홈리스들을 부당하게 퇴거시키는 일들이 올해 계속해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해당 지하도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자체에 귀속된 '공공시설물'이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서울스퀘어는 해당 지하도를 사적으로 통제해 왔습니다. 보안직원들은 지하도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홈리스들이 서울스퀘어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쳐 '영업을 방해한다'며 이들을 지하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서울스퀘어 출입문을 폐쇄하는 시간인 오후 10시가 되기 전까지 다른 곳에 있다가 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멋대로 해당 공간을 관리해 왔습니다. 무릎을 굽히기 어려워서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던 한 홈리스에게는 "의자 채로 옮겨 드려요?" 따위의 언행을 일삼으며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보안직원들의 행위는 명백한 월권행위였습니다. 지하도가 서울스퀘어 출입자의 편의, 그리고 그에 따른 서울스퀘어의 운영 수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공공시설물인 '서울역 앞 지하보도'를 민간시설인 서울스퀘어가 배타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으며, 더욱이 홈리스들을 '영업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 통제할 권한 또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공에도 직무 유기의 책임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하연결통로 설치 및 유지관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든 유형의 지하연결통로는 공적‧공공적 용도로 사용되어야 하며, 사적 이용은 공공적 이용을 위해 제한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서울스퀘어 보안직원들의 월권행위는 공공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시는 지하도의 관리 주체가 서울시 중구청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리스 당사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서울스퀘어 관리 구간"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지하도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을 넘어, 무엇보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물에서 홈리스가 퇴거를 당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홈리스를 공공장소에서 퇴거시키는 일은 이들이 그러한 장소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일순간에 지워버립니다. 이들을 밖으로 내몬다고 해서 홈리스 상태를 유지‧심화시키는 구조는 바뀌지 않으며, 이와 같은 퇴거 조치는 오히려 이들을 더욱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몰아 홈리스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홈리스의 안전과 권리가 당연시되려면

홈리스가 공공장소에 머물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오히려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에 실패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공공은 이에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홈리스를 탄압하는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광장을 이용하는 다른 시민들의 불편과 안전을 이유로 홈리스들의 물품은 줄곧 폐기되어 왔습니다. 이들을 지원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이 도리어 앞장서서 물품 철거를 단행한 일도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노숙인시설에서는 확진 환자를 별도로 격리하지 않은 채 방 하나에 십수 명의 입소자를 구분 없이 격리한 후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였습니다. 2021년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는 역내 시설물을 동파 등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이유로 지하도를 폐쇄해 한겨울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던 십수 명의 홈리스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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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7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돼 있던 10여 개동의 노숙용 텐트와 물품이 철거된 후 폐기처분 되었다. 당일 집행에는 철도공사, 경찰, 서울중구청, 시립노숙인시설 등 다수의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위 사진은 2022년 7월 7일,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노숙 물품 무단 폐기 규탄 기자회견 모습 ⓒ 홈리스행동

 
홈리스의 안전은 과연 누가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까? 2012년 서울시가 만든 '노숙인 권리장전'에는 '노숙인도 우리 사회의 동등한 시민'이며,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와 공공서비스 접근에서 차별받지 아니하며, 누구에게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UN인권이사회는 기업 또한 "기업 활동에 의해 빈민의 권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고 감소시킬 것"을 극빈과 인권에 관한 원칙으로 채택한 바 있습니다.

민간 상업시설에 의해 사유화된 공공 공간이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배타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요즘일수록, 공공은 권리장전 등을 통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바를 결코 저버리면 안 될 것이며, 민간 또한 기업 활동이 "빈민의 권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지하고 이를 악화시키는 부당하고 임의적인 퇴거 조치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언들이 단지 허황된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각종 제도와 지원 체계가 촘촘하게 마련되어야 하지만, 이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합니다. 비적정 거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는 '주거사다리 지원사업'은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여전히 사업 대상에서 거리홈리스를 배제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내년 예산에서 '거리노숙인 지원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금액을 전액 삭감한 바 있습니다. 지난 8월 서울시의원들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서울역광장의 건전한 이용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조례안'은 제안 이유로 "노숙인들의 음주, 흡연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들며 홈리스를 광장을 어지럽히는 존재로 낙인찍었고, 주요 방안으로 "금주구역을 규정", "집회 및 시위 금지" 등 광장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후퇴시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홈리스의 공존할 권리

홈리스의 주체성과 권리에 기반한 정책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권리 보장의 조건으로서의 자립과 자활이 아니라, 권리로서 자립과 자활을 선택하고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 변화가 당사자들에게 온전하게 가닿기 전까지는 이들이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거리현장보호 체계 또한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홈리스를 공공장소에서 밀어내는 행위들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들을 내쫓는다고 해서 홈리스 상태를 심화시키는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이들을 당장 거리에서 지워버린다고 해서 홈리스 문제가 아예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광장'에 어떠한 행위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논의해 볼 수 있겠으나, 그 논의가 광장에 존재하는 이들을 지워 버려서는 안 됩니다. 홈리스가 편한 곳이 모두에게 편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주장욱씨는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입니다.
#홈리스 #노숙 #홈리스추모제 #공공장소 #형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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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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