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취재팀이 방문한 강병진씨의 자택옆에는 강씨가 늘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가 놓여있다.
이고은
"매일 죽을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여러 번 장애인정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습니다."
10년째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를 앓고 있는 강병진(31)씨는 매일 다리가 불타고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CRPS는 외상이나 수술 후 신체 일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생기고 손상 부위를 넘어 다른 부위까지 통증이 번져나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군대에서 사고로 발목을 다친 후 방치된 강씨가 뒤늦게 입원했을 때는 이미 통증이 다리에 퍼진 상태였다.
CRPS 발병 후 그의 세상은 작은 방 안에 갇혔다. 발을 땅에 내딛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기에 병원 방문을 제외한 외출은 손에 꼽힌다. 병원에 갈 때도 누군가 동반한 채 휠체어나 목발에 의존해야 한다. 더군다나 초기에 오른쪽 다리에만 있던 통증이 현재는 왼쪽까지 전이돼 양쪽 다리 모두 통증이 있다.
통증 점수(VAS)에 따르면 그는 평상시 8점(통증으로 활동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심할 때는 10점(최대한의 통증)의 통증을 느낀다. 통증으로 인해 수면 중에 몇 번씩 깨는 것은 물론 취재팀의 방문 당시 먹고 씻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어 보였다. 강씨는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자살 시도도 했었고 다리를 절단하려는 생각도 했었는데, 다리를 잘라도 다른 신체 부위에 통증이 남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포기했어요"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데도 그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관절 운동범위가 90% 이상 감소돼야 한다는 관절구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2021년 시행령 개정으로 CRPS가 장애범주에 포함됐지만 강씨를 포함한 환자 대부분이 장애인정을 받지 못한 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융통성 없는 장애등급판정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CRPS는 진단 후 2년 이상의 지속적인 치료에도 근위축·관절구축이 뚜렷한 경우 혹은 팔 또는 다리 전체에 마비가 있는 경우만 장애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는 CRPS로 인한 필연적 증상이 아니며 환자의 상당수가 통증 자체만 가지고 있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학과 최종범 교수는 7월 27일 취재진과 한 인터뷰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장애인정기준이 만들어진 것이 문제"라며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한 환자들의 경우 통증과 관계없이 관절구축이 호전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장애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오죽 답답하면 환자들이 '재활 괜히 했다'는 말까지 한다"라고 전했다.
한국 CRPS 환우회 이용우 회장은 해당 시행령이 구색만 갖춘 실효성 없는 개정이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회장은 지난 7월 인터뷰에서 "CRPS가 장애인정 범주에 포함되기 전에는 그래도 (장애범주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행되니 크게 변한 게 없다"라며 "이건 완전 기대를 시켜놓고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터무니없는 인정기준 앞에서 다시 한번 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