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오래된 우물을 품고 있는 고택
유승현 포토 디렉터
아담한 한옥과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 찬 바람 끝의 까치밥 홍시... 함봉산 안자락에 안긴 윗열우물마을엔 고아한 풍경이 웅숭깊게 들어앉아 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산과 논밭만 펼쳐졌던 호젓한 시절이 잠잠히 머문다.
수백 년 변함없는 풍경과 순수한 인심 뒤에는 긴 세월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반남 박씨 세양공파 27대손 박흥서씨는 말한다.
"윗열우물마을은 집성촌이에요. 창녕 성씨(昌寧成氏), 반남 박씨(潘南朴氏), 능성 구씨(綾城具氏), 영월 신씨(寧越申氏) 일가가 모여 살며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켰죠."
여전히 이곳엔 성씨와 박씨가 많다. 창녕 성씨 회곡공파 참의공 종중(宗中)에 따르면 세조 2년(1456년) 병자사화 때 성씨 문중이 화를 피해 성습지 등 일곱 가정이 마을에 정착한 뒤 560여 년 세거지(世居地)가 됐다 한다.
"2006년까지 128가구가 그 명맥을 이어왔는데,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서 변화가 시작됐어요." 반들반들 윤이 나는 서까래와 ㅁ자 마당을 둔, 수백 년 묵은 기와집이 속절없이 사라졌다. 새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빌라를 올렸다.
그래도 마을엔 발길 닿는 곳마다 옛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물에선 여전히 물이 샘솟고, 여기저기 손질을 한 개량 한옥도 제 나름 세월의 멋을 풍긴다. 가파른 세상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대손손 터를 지켜온 사람들의 순박함도 여전하다. "내가 태어난 집, 함께 자란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어요."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 위로 햇살이 퍼진다. 느릿느릿, 열우물마을의 계절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