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
에이원북스
향후 4년간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 살림을 챙길 국회의원을 뽑는 2024년 4.10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 곳곳에 이미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정치인의 대형 현수막이 주요 교차로에 내걸려 시민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바야흐로 선거 시즌이다.
이일우 서울시의회 전 전문위원이 발간한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에이원북스)을 최근 읽었다. 2022년 7월 서울시의회 출범 시기에 맞춰 발간된, 풀뿌리 민주주의 장에서 발생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당시 현직 입장에서 쓴 책이다. 이일우 저자(현재 전 전문위원)는 그동안 "인력과 예산 규모, 권한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국회를 대형백화점에, 서울시의회나 경기도의회 같은 광역의회는 대형마트로, 은평구·서대문구·도봉구의회 같은 자치구의회는 동네에 있는 편의점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다고 폄하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못지않게 주민이 바로 써야 하는 생활용품 구입 측면에서 때론 편의점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각 정치 단위의 유별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정치인을 서열화한다. 당장 이름을 대라면 대부분 오세훈 서울시장 정도를 거론할 것이다. 구청장과 구의회 의장의 경우 분명 묻는 이도 대답 못할 이도 무안하리라 예상될 정도로 지방의회에 무심하다. 이일우 저자 또한 구의회 근무 전까지 "선출직 계층의 가장 아래에 구의원이 있는 것, 지방보다 중앙에, 의회보다 집행부의 장을 훨씬 높게 쳐준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고백했다.
플라톤은 '정치에 관심 없다면 국민에게 큰 징벌이 내려지는데, 이는 국민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이 지배자가 되고 그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는 불행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고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책 저자는 지역에서 원하는 사업이 있어 국회에 해당 예산을 요구할 때, "하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지만 여의도까지 제대로 전달될지 의문이고, 중수는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결특위 위원이나 예결특위 간사를 접촉하며, 고수는 오히려 정부부처, 그 가운데에서도 예산안을 총괄하는 기재부를 직접 타겟하여 접촉한다"라고 예를 들며 의회와 정부, 그리고 지방의회와 시군구청의 예산을 둘러싼 권력 구도를 설명했다.
시민의 목소리와 염원을 직접 대변하는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들은 종종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언론에 다뤄지지만 실제 행정부가 지닌 권한과 책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예산안의 경우,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국회가 증액하거나 감액하는 규모는 정부가 편성한 규모에 비하면 불과 얼마 안 된다. 정부안인 470조 원 중 국회가 증액하거나 감액한 규모는 10조 원에 불과할 정도로, 국회보다 정부의 예산편성 책임이 훨씬 크다는 반증"으로 지자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국민 과반수 지지를 받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비토(거부권)를 행사했다. 대통령의 법적 고유 권한인 이 거부권이 행사될 때 국민은 입법보단 행정이 현행법상 우위에 있음을 직시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구제할 수 없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저자는 책에서 "지방의원이라면 자신의 고유한 권한을 십분 활용할 줄 안다'라고 말하며 "집행부의 정책이나 각종 사업은 형태만 달라질 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의회와 (국민에게) 등장한다"라고 했다. 집행부가 국민 눈높이에서 행정 본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려면 결국 국민 스스로 정치에 관심 갖고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것만이 기울어진 행정과 입법의 정치 지형에서 사'순리의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순리의 정치'를 1등급의 정치라 했다. 만약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 순리에 따른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사마천이 제시한 그 하위 단계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정치'를 목표로 국회의원 후보들을 살펴봐도 좋다. 하지만 현 한국정치 상황에서 대형현수막에 걸린 예비후보 얼굴을 보면 호기심과 궁금증 보단 안타까운 마음부터 일어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제 한 몸 불사르려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럼에도 그 중 누군가 한 명이 최종 선출되는 것 또한 정치의 순리인만큼 후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