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자료사진)
픽사베이
연말이면 으레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소망, 새로운 계획, 새로운 도전 등. 특별한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새로워야 하고 남과 다른 특별한 무엇을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창한 구호, 신선한 희망,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무한한 구복 의식까지.
나이가 드니 무한하게 확장되던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지난해와 새해, 어제와 오늘의 경계도 선명하지 않다. 그날의 계획, 주간 계획, 한 달의 계획은 늘 세우던 대로 꾸준히 이어지는데, 딱히 올해의 계획이라 정할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매일의 삶을 묵묵히 마주할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새해가 특별한 것 같아서 좋았던 기억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특별한 삶은 가볍지 않았다. 팔짝 뛸 정도의 기쁜 일은 묵직한 슬픔과 함께 찾아왔다. 게다가 적지 않은 나이의 특별한 일상은 점점 더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언제부턴가 새해의 목표가 거창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늘 같은 일상을 또박또박 짚어 나가는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과 내일, 새해도 그런 날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제는 삶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 믿는 삶은 환상이라는 것도. 위태로운 일상과 어긋난 계획도 결국 나를 만드는 중요한 세계라는 것을 이제는 선선히 인정한다. 글쓰기 강의에서 말하듯이, 버려지고 흩어진 일상들이 오히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돌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무엇을 배우고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 자격증을 획득하고 사람들이 인정하고, 그래야만 나를 잘 돌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러 이유로 배제되었던 배움의 목록은 아쉬움을 남겼고, 도전을 시도했어도 완성형이 아닌 채로 어물쩍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방치되거나 소외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언제나 충실했다.
충실히 보낸 한 해... 올해는 더 천연덕스럽게
지나고 보니 2023년의 한 해를 그렇게 살아왔다. 비록 미완일지라도 마음에 담으며 만족했다. 너무 절실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절실함이 크면 실망이 컸고 애씀이 다하면 후유증이 오래갔다. 그렇게 해서 수수하고 조촐한 행복감으로 나를 채우며 살았던 것 같다.
해서, 2024년 갑진년(甲辰年)의 특별한 계획은 없다. 오늘을 어제와 같이 천연덕스럽게 살아내고 싶다. 어제처럼 '태연하게' 살기, 2024년의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아침에 무기력하지 않은 모습으로 눈을 뜨고 저녁이 되면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며 잠에 푹 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