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장애인협회(DPOD) 건물의 양문개방형 엘리베이터(좌)와 방문객을 위한 서로 다른 높낮이의 옷걸이(우)
박상민
안내 데스크와 방문자용 옷걸이는 일반적인 높이와, 휠체어 사용자에게 편리한 낮은 높이, 두 종류로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서 길을 찾기 쉽도록 각기 다른 방향의 복도는 다른 색깔로 구분되어 있었고, 사무실 문이나 플러그 색깔은 하얀색 벽에서 눈에 잘 띄는 짙은 색으로 칠해서 시력이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였으며, 곳곳에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배려들이 단지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함께 혜택을 누리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배려가 되도록 세심하게 고려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성이 좋은 건물을 짓는 것이 결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설계한 것도 놀라웠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처럼 모든 건물에 쉽게 접근하고, 그곳에서 배우고, 일하고, 봉사하면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했다.
설명을 듣던 중에 장애인으로 포함시키는 범위가 다소 넓은 듯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덴마크에서는 당뇨, 관절염 등 한국에서는 장애로 여겨지지 않는 질병들도 장애에 포함시키는 것 같은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어떻게 하나요?" 이에 돌아온 대답은, "장애든 질병이든, 혹은 고령의 나이이든 간에 그것이 사회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나 장벽으로 작용하여 사회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면 장애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건물 시설을 설명해주는 직원의 발음이 너무 또박또박 정확해서 혹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말소리를 알아듣거나 입모양을 읽는 것이 쉽도록) 일부러 정확하게 발음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봤더니, 아마 맞을 거라고, 웃으면서 답하는 모습이 정말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진정으로 비판하는 것
- 불평등과 경쟁
경쟁해서 남을 이겨야 잘 살 수 있다는 교육을 주입받고, 자라면서 실제로 그런 사회를 목격해온 내게, 덴마크는 정말 신기한 나라였다. 유치원 때부터 협력해야 잘 살 수 있다고 교육을 하고,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계속 가르치는데도, 우리나라보다 행복도가 높고, 심지어 국민들은 더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나의 고정관념과 가치관에 커다란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 나라의 경제적 수준을 만드는 데에는 그 사회의 교육 철학이나 가치관만이 작용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 역사적, 정치적 상황 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어쨌든 덴마크 역시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넓지도, 인구가 많지도, 자원이 많지도 않은 나라라는 점은 확실하다.
복지 제도를 일찌감치 확립하고, 계속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온 덴마크 사회는 현재 세금에 대한 높은 투명성, 가장 낮은 부패 지수, 가장 낮은 불평등 지수, 서열이 없이 평등한 대학 체계 등 여러 방면에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높은 세율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민 대다수가 높은 세금 부과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를 하며, 세금의 혜택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평일 오후 3시 반이 넘어가면 이미 러시아워가 되어서, 자전거와 자동차로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덴마크의 도로를 보면서, 긴 노동시간과 야근에 시달리는 한국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최근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는 K-팝과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로 꼽히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공교롭게도 빈부 격차에 따른 불평등과 극심한 경쟁을 비판한 작품들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불평등과 경쟁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단지 그 문화 상품을 수출하고,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평등과 경쟁의 극단을 달리는 한국에서 온 내가, 평등과 협력의 가치가 최우선인 덴마크에서 느낀 깨달음은, 협력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특권을 얻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교육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현실에서라면 시험 제도가 공정함을 갖기란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혼자만 행복하기보다 함께 행복한 사회
물론 덴마크도 완벽한 사회는 아닐 것이고 어딘가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만 성공하고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려면,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면, 시험 점수보다 협력하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배운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분명히 좀 더 행복에 가까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평등과 협력의 가치를 알려준, 꿈틀비행기를 타고 떠난 덴마크 여행은 나에게 '행복'에 대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주었다. 꿈틀비행기를 기획하고 진행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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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문학과 영화와 음악에서 epiphany를 찾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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