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생일날 만드는 수수팥떡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수록 이미지
우리역사넷
수수팥떡을 계기로 언니를 소외시키려 마음먹자, 아이의 상상은 이제 언니도 같은 생각을 할 것으로 여기게 한다. 언니가 자신을 홀대한 이상 언니집에 가더라도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적 비약과 상황 설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언니의 동생에 대한 음식소외라는 뜬금없는 상황이 준 문화적 당혹감은 아이의 시각에서 그 정서적 배경을 이처럼 파악할 때 해소된다. 환언하면 맥락이 비로소 맞아 떨어진다. '형네집에 갔더니'의 문면은 언니를 절실하게 그리워하는 동심을 반감으로 표출한, 일종의 '귀여운 반란'이었던 것이다.
이 노래의 내력은 제법 상당하여 초기자료는 1898년 고종 35년에 미국 민속학자 E. B. Landis가 당시 자국 민속학회 학회지에 투고한 글에 보인다. 이후 1933년에 김소운이 펴낸 <조선구전민요집>에도 위의 예시 외에도 여러 편 실려 있다.
그런데 전승과정에서 노래 대상이 언니가 아니라 고모로 바뀐다. 무엇보다 시대 사정이 달라진 탓이다. 아이를 둘만 낳아 기르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보모역을 할 만큼 터울 많은 언니들이 귀해진 반면, 대가족사회의 여파로 그 시대까지도 출가 전에 오빠의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던 고모들은 주변에 여전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출가한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의 본래적 향유 정서가 현실감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형네집에 갔더니'가 '고모네집에 갔더니'로 변화를 겪게 된 배경이다. 지금 이 노래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십중팔구 후자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대 우리에게 대가족사회나 다출산사회는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출가 전의 언니나 고모들과 쌓은 추억이 없으니 지금은 이들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도 자리하기 어렵다. 이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이러저러한 캐릭터들이 사로잡고 있다.
저출산시대의 미래 아이들, 보모같은 터울 진 언니가 아니더라도 친구같은 형제들이 여럿 있어 어린 시절 추억을 많이 쌓으며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저 한낱 꿈일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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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자 친구, 교사까지 했던 '큰언니'가 그리워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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