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작가.
최방식
돈을 벌어야 했다. 친구들 중고교 다닐 때 공장과 공사장을 떠돌았다. 그때 동네 한 형이 노점에서 책을 팔았는데, 책을 읽고 싶어 친하게 지냈다. 그 형이 독서회에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해 따라간 게 열여덟 그의 삶을 바꿔놨다.
"매주 한 번 종로도서관에서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써 발표했어요. 당시에 그런 모임이 많았거든요. 공돌이뿐 아니라 대학생·직장인 등도 참여했어요. 한 여자 선배가 검정고시 공부를 한다며 내게도 권하더라고요. 이튿날 등록했죠(후에 대학 졸업 뒤 교사가 됨). 월급이 반절 깎이는데도요. 6개월만에 중학과정을 합격했어요."
고교 검정고시 공부 중 군에 입대했다.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는데, 심사 때 검정고시 이야기를 하는 통에 현역 판정을 받고 말았다. 다행인지, 행정병으로 배정받아 맘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휴가 때는 군용가방(더플백) 가득 책을 사들여 읽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건 군 복무 때 습작 덕이죠. 병영 억압·폭력이 너무 힘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다 죽여버리고 말 거야'(폭력 상관에) 소재 소설은 카타르시스였던 거죠. 군대가 제겐 작가 학교였던 셈이죠."
그는 1988년 1회 전태일문학상(전태일재단)을 받았다. 한 건설노동자가 용접봉을 사러 세운상가에 갔다가 노동자들의 가두시위 현장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주제의 중편 소설 '하루', 작가로 등단한 것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주간 화보잡지 '파리마치'(2년 전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소개)에 1955년 실린 한 표지사진을 콕 집어 '신화'라고 했다. 프랑스 군복의 한 흑인이 삼색기(프랑스 국기)에 거수경례하는 장면을 가리켜 프랑스 제국주의의 알제리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계략이라 비판한 것. 노동자의 정체성을 찾는 백 작가의 소설 '하루'. 그 '신화' 헤집기가 빛을 발한 것이다.
그 뒤 소설창작과 직업을 병행할 수 있었다. 출판사 편집 일(편집장 포함)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생계를 꾸렸다. 시도 썼다. 노동현장 등 삶의 애환을 담은 것들인데 시집 한편 나올 정도라 했다. 장편소설 '사이버세상'은 97년 문학사상(월간) 입상작이 됐다.
1997년 안철수연구소(2000년 이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에 입사했다. 89년부터 작가 및 편집일을 하며 컴퓨터 공부를 했고, 잡지 '마이크로소프트'에 기고하곤 했는데, 잡지 편집장이 연구소에 특채돼 그의 권고로 함께 간 것이었다. 프로젝트매니저로 8년여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