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야간순찰을 한다.
월간 옥이네
우리 마을 안전을 위해 모인 여성들이 있다. 해가 지고 바람이 싸늘해진 저녁, 이원면행정복지센터에 모인 이원여성자율방범대는 야간순찰을 준비한다.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순찰 경로를 재확인하며 준비를 마친 10명의 대원이 힘차게 야간순찰을 시작하자 캄캄했던 골목길이 밝아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는 이원여성자율방범대 야간순찰에 동행했다.
우리 마을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을 며칠 앞둔 날답게 칼바람이 불어오지만 방범대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춥고 더운 날에도 야간순찰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비와 눈이 많이 와 보행이 어려운 날이면 차량으로 순찰하며 마을을 지켜오고 있는 방범대. 오후 6시 이후 사람 없는 어두운 길이 걱정돼 시작한 야간순찰은 2015년 창단 이후 한 주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회사원, 자영업자, 농민 등 대원 모두 본업이 있어서 순찰 당일 그때그때 가능한 대원들이 모여서 진행해요. 전원 참석하는 날은 드물지만 매번 10명씩 모여 안전하게 순찰하고 있어요. 차량 순찰 때는 개심리, 장찬리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오늘같이 도보로 할 때는 이원역, 이원초등학교, CJ대한통운택배 옥천허브터미널을 중심으로 순찰해요." (김종숙 대장, 57세)
도움이 필요한 주민은 없는지, 음주로 인한 길거리 소동은 없는지 2인 1조로 줄을 맞춰 1시간 동안 골목을 살피는 방범대. 붉은 경광봉과 노란 활동복이 가로등 없는 길을 밝힌다.
이곳저곳 살피는 대원들 사이에서 긴장한 모습의 대원이 눈에 띈다. 이날 처음 방범대 활동에 참여한 안현성(36), 안정은(33) 대원이다. 자매인 두 대원은 김종숙 대장의 권유로 올해 함께 입단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지 1년 됐어요. 평소 봉사에 관심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대장님을 만났어요. 마을에 여성자율방범대가 있는데 같이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안현성 대원)
안현성 대원은 자신처럼 봉사에 관심 있는 동생 안정은 대원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이미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이웃'으로 김종숙 대장을 알고 있던 터라 동반 입단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멀리 가지 않고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봉사라서 좋았어요.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고 이웃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마을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고 이웃과 친목도 쌓을 수 있어서 고민 않고 결정했어요.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대원분들이 잘 챙겨주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정은 대원)
앞으로 잘해보자고 의지를 다지는 자매 대원뿐 아니라 초기부터 함께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대원도 있다. 방범대 활동 10년 차인 김진화(51), 김애경(51) 대원이다. 두 대원은 야간순찰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어르신을 귀가시킨 경험이 있다. 이후 외진 골목길을 더욱 눈여겨보게 된다고.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귀가하셨죠. 그 뒤로는 골목길을 구석구석 살펴보게 돼요. 오늘같이 기온이 낮은 날이면 잠깐이라도 위험하잖아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순찰할 때 항상 집중해요." (김애경 대원)
두 대원 역시 봉사에 관심이 많아 방범대 활동을 시작했다. 직장인이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지만 마을에 여성자율방범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입단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활동 햇수를 세어보니 벌써 10년 차라며 빠른 시간에 새삼 놀란다.
"저는 이원면, 애경 대원은 옥천읍이 고향이에요. 각자 결혼하고 이원에서 자리 잡았는데 같은 마을에 살아도 만날 일이 많이 없었죠. 직장을 다니니까 더 힘들어요. 그런데 봉사로 인연이 닿아 동네에 친구가 생겼어요. 나이도 같고 관심사도 같으니 즐겁게 방범대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김진화 대원)
동네에서 친구를 사귄 것 외에도 방범대 활동을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뿌듯함'이 있다. 야간순찰로 늦은 시간 골목길을 지나가도 무섭지 않다는 주민이 늘어난 것. 고맙다는 주민들의 말 한마디가 활동을 지속할 힘이 됐다.
"우리 마을에 여성방범대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방범대를 꼭 남자만 하란 법이 없잖아요. 여성들도 마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요. 주민들이 여성방범대가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역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김애경 대원)
봉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