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동학농민군 위령탑대뫼 마을의 녹두회관 마당에 세워진 위령탑. 1987년 6월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이한열 모습을 형상화 했다.
이영천
부조는 1987년 6월 9일 직격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의 이한열 형상화다. 끝내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그에게 졌다. 최근 읽은 소설도 한몫했다. 그때 그곳에서 잃어버린 이한열의 운동화 한 짝, 남아있는 다른 그것을 묘사한 <L의 운동화>(작가 김숨 소설)가 뇌리에 남아서다. 이번 걸음 역시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위령탑을 먼저 마주한다.
마을은 혁명이 설계된 무대다. 그 기획에 따라 동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주체는 이름 없는 농민들이었다. 목숨 바쳐 싸운 그들에게 이 조형물이 어떤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이 또한 기억을 위한 장치다.
기억은 그들이 닦아 세운 토대를 발판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다짐이다. 다짐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실천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L의 운동화'를 기억하듯, 죽음으로 산화한 이름 없는 동학농민군에 대한 기억도 현재진행형이어야 하는 이유다.
혁명 모의
대뫼엔 잊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혁명을 설계하고 그 약속으로 사발통문을 작성한 집이다. 녹두회관에서 잠깐 거리다. 이곳에서 고부 봉기를 비롯해 동학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이 모여 비장한 각오로 혁명을 결의했다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마을이 기댄 능선을 따라 동서로 뻗은 길 바로 아래 제법 규모 있는 한옥이다. 큰길에서 아래로 뻗어 내린 좁은 길을 끼고, 정남향으로 정갈하게 앉아있다. 집 담벼락엔 박홍규 화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사와 서정을 담은 그림들이 혁명 과정을 축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