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6주기 추모식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서 서거 86주기 추모식 엄수

등록 2024.03.10 17:18수정 2024.03.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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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두 흥사단 이사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조성두 흥사단 이사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흥사단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6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에서 엄수됐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와 흥사단이 마련한 이번 추모식에는 이명우 전 평안남도지사가 약전을 봉독했고, 김재실 도산기념사업회장이 추모식사를 낭독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장관과 이종찬 광복회장, 조성명 간남구청장, 조성두 흥사단 이사장이 각각 추도사를 도산 선생 영전에 바쳤다.

기념사업회와 흥사단 회원과 시민 300여 명이 기념관 강당을 가득 메웠고 강당안에 자리가 없어 강당 밖까지 간이 의자가 가득 놓이기도 했다. 추모객들은 평생 조국 해방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도산 선생을 추모했다.

이번 86주기 추모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최근 총선과 북한의 계속되는 위협 앞에서 혼란스러운 정국에 국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주창했던 도산의 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평생 위기에 빠진 나라 위한 삶을 산 참 지도자의 표상 도산 안창호 선생 
 
 서울 동숭동 흥사단 앞 안창호 선생 흉상에 흥사단독도수호본부가 추모 꽃화환을 바친 모습
서울 동숭동 흥사단 앞 안창호 선생 흉상에 흥사단독도수호본부가 추모 꽃화환을 바친 모습흥사단독도수호본부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세때 도산 선생은 서재필이 주도하던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필대은과 함께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청년으로 성장한 도산은 1905년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했고 1907년에는 국내에서 신민회를 조직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망명길에 오른 도산은 1912년 미국에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1913년에는 8도 대표를 모아 흥사단을 창립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내무총장을 맡았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폭탄 사건과 관련해 일경 체포돼 국내로 끌려왔다. 1935년 옥살에서 풀려났으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감옥에 갇혔고,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도산 선생은 평생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았다. 60 평생 나라를 지키고 되찾기 위한 온전한 애국의 삶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도산안창호 #흥사단 #도산안창호기념관 #안창호선생서거86주기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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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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