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흥사단 앞 안창호 선생 흉상에 흥사단독도수호본부가 추모 꽃화환을 바친 모습
흥사단독도수호본부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세때 도산 선생은 서재필이 주도하던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필대은과 함께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청년으로 성장한 도산은 1905년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했고 1907년에는 국내에서 신민회를 조직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망명길에 오른 도산은 1912년 미국에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1913년에는 8도 대표를 모아 흥사단을 창립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내무총장을 맡았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폭탄 사건과 관련해 일경 체포돼 국내로 끌려왔다. 1935년 옥살에서 풀려났으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감옥에 갇혔고,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도산 선생은 평생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삶을 살았다. 60 평생 나라를 지키고 되찾기 위한 온전한 애국의 삶이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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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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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6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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