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읍내1894년 1월 농민군의 봉기로 해방구를 맞았을 고부 읍내.
이영천
억울하게 징발당한 세금을 다시 되돌려 받는다. 나라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골고루 나눠준다. 항시 빼앗기기만 하던 농민들이 어리둥절하다. 진정 새 세상이 왔는지 아직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빼앗긴 것을 되찾은 기쁨에 감격해한다.
어리숙할망정 횃불 든 봉기군도 군대다. 이에 고부 백성이 자발적으로 동조한다. 봉기군에게 필요한 소소한 일용품이 답지한다. 부자들은 눈치껏 돈과 곡식을 내놓는다. 군막 주변으로 급하게 세워진 여러 장막이 장터를 방불한다.
끼니마다 몰려드는 가난한 백성에게 쌀밥을 지어 배불리 먹이고, 여기저기 풍물패와 창의기를 앞세운 행렬의 신명으로 해방구를 실감한다. 서로를 위하며 나누고 치하하는 모습이 모두 한 식구 같은 흐뭇한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다. 같이 살고, 같이 이루며, 같이 나누는 대동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만석보를 헐자
날이 밝자 백성들은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장 알아차린다. 봉기군이 붙인 방문 내용으로 이를 확인한다. 봉기군 지휘부는 가장 먼저 만석보를 헐자는 결의를 하고, 배들 농민이 이를 주도한다.
수많은 농민이 괭이, 가래, 곡괭이 등으로 꽁꽁 언 보를 해체하는 모습은 마치 신명으로 벌이는 한판 놀이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삼오오 조를 짜 역할을 분담한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그 운율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일판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