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신문
전남 완도 군외면 소재지에서 서부도로를 달리면 해넘이 공원을 만나게 된다. 해넘이가 아름다운 공원을 지나면 처음 만나는 마을이 삼두리다. 삼두리는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의 자자일촌이다, 138가구 중 117가구가 밀양박씨다.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삼두리는 해남군 은소면의 노구미(老仇味)라는 아주 외진 어촌마을이었다.
1896년 완도군이 설군되면서 해남군 은소면이 완도군 군외면으로 바뀌었고 삼장안(三長岸)마을과 두읍마을이 합쳐지면서 첫 글자를 따서 삼두리가 됐다.
지주식 김양식 하기 좋은 마을
오늘날 삼동청소년수련원 주변 삼장안에 살았던 사람들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김양식이 활발히 이루어지자 양식어업의 필요에 따라 바닷가로 이사를 하고 새로이 터전을 잡아 마을을 이루면서 삼장안은 사라지고 삼장안과 두읍리가 합쳐져 마을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삼두리는 농사도 많은 마을이다. 마을 앞 바다는 적당한 수심과 갯벌이 좋아 지주식 김양식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김 양식을 전문으로 하는 어촌마을이지만 산골(마을 앞 들녘)과 쟁천불(바닷가 쪽에 있는 들녘)에서 수도작 농업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둔덕을 개간한 밭에서는 해풍 맞은 고추와 봄동이 마을의 특산품으로 생산된다. 섬마을이지만 쌀밥을 넉넉히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완도군의 대표적인 반농반어 마을이다.
삼두리 마을에는 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삼두팔경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 중 제 3경인 농로열부(農路烈婦)는 농사를 지으며 농번기 때 부녀자들이 서로 상부상조하였는데 품앗이를 하면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여자들의 행렬을 가리키는 것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농촌을 이야기하고 있다.
완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섬 큰애기 쌀 두말 못 묵고 시집간다.″
섬에서는 쌀을 생산 할 수 있는 물과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쌀밥을 먹기가 어려운데 삼두마을은 마을 앞 농토가 어느 정도 있어서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마을이다.
반농반어 마을인 삼두마을도 기본적으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니 매년 정월 초 이튿날 당 할아버지와 당 할머니를 신격으로 당제를 모신다. 마을 앞에는 주민들 모두가 신성시하는 당 숲이 있다.
당 할아버지 모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