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국회 도서관에 설치된 22대총선 개표상황실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침통한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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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 경제지표들은 한국경제호가 암초에 부딪혀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첫 번째 암초는 '1.4%의 저성장 충격'에 어른거리는 장기 불황의 그림자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1%대 미만의 성장을 기록한 적은 단 다섯 차례뿐인데, 이 중 4번은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다.
즉 ▲1980년 2차 석유파동(-1.6%) ▲1998년 외환위기(-5.1%) ▲2009년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사태(-0.7%)가 그것이다. 2023년이 중요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경제위기가 아니고도 1%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 GDP 순위는 2020년 10위에서 2023년에는 13위까지 밀렸는데, 1400원 방어선을 위협하는 원-달러 환율을 고려하면 올해에는 14위인 호주에게도 꼬리를 밟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수출경제 성적표도 총체적 난국임을 보여준다. 무역수지는 2년 연속 대규모 적자(2022년 -472억 달러, 2023년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IMF 208개국 중 순위가 2021년 18위에서 2023년 상반기에 200위로 급락하는 수모를 견뎌내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수출이 늘어도 수지구조가 악화되는 불황형 적자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국 수출은 2021년 25.3%에서 2023년 19.7%로 급락한 상태이고, 대중국 무역수지는 1992년 대중 수교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아무리 불편한 지표들을 감춘다 해도 '사상 처음'이 붙은 지표들을 국민이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내수경제 성적표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초유의 고물가·고금리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실질소득 기조적으로 감소하며 소비 불황을 견인하는 구조적 위험에 빠진 상태다. 가계 실질소득은 2022년 2분기에 6.9%로 정점을 찍고 증가한 이후 2022년 4분기 -1.1%, 2023년 4분기 0.5% 등으로 아예 길게 드러누워 버렸다. 여기에,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부채(가계 및 자영업자대출) 증분만 1000조 원을 넘어서는 등 부채발 경제위기가 목전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총선 심판엔 민생위기에 긴축으로 대응한 정부도 용서하기 어렵지만, 매년 60조 원에 달하는 펜데믹 이자폭리를 거둬들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분노도 담겨있다.
이번 총선은 경제성적표로 검증된 무능을 단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한표 한표에는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한 상황에서 경제 시스템이 더 망가지면,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담겨있다. 한국경제호가 직면한 위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위기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으라는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경제정책에 깃든 '이념 편향성'을 단죄한 선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건전재정, 공공요금 민영화, 노동·연금·교육개혁 등을 강조할수록 민생경제의 형편이 더 어려워지는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이는 경제정책에 스며든 친자본·친기업 편향 즉, 굴절된 시장주의 이념이 지닌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정부가 시장을 통한 체질개선을 강조하면, 왜 충격이 민생경제로 향하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총선은 '부자 뺀 건전재정'의 민낯을 심판한 것이나 다름없다.
건전재정의 본질은 '부자감세·서민증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인세 부담을 덜어내는 기업에는 확장재정이겠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민생경제의 입장에서는 고강도 긴축재정에 가깝다. 수치로 살펴보면, 법인세 세수는 부자감세에 힘입어 2022년 104조 원에서 2023년 80조 원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정책 소외 영역에 존재하는 근로소득세만큼은 거의 모든 세수가 감소했음에도 57조 원에서 59조 원으로 증가했다. 사실, 작년에 -56.4조 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세수펑크를 낸 주범도 건전재정에 깃든 친기업 편향이다.
더 심각한 이념 편향은 민생물가 대란의 주범인 '공공요금 시장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정부는 유례없는 고물가 경제하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단행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화를 자처했다. 전기나 가스, 교통 요금 등 누적된 공공적자를 가격 인상을 통해 민간에 전부 다 전가하면, 일시적으로 재정 사정이 좋아지는 착시 현상에 빠지게 된다. 소비자물가가 3% 정도인데 전기·가스·수도 물가가 20% 이상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즉,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이 작금의 민생물가 대란 사태를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가 지금처럼 보편으로 물가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취약계층만 구제하는 행태를 무한 반복하면, 공공적자를 메우는 수단으로 민생곳간이 털리는 악순환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부는 공공발 민생물가 대란 사태를 초래한 책임에서, 국회도 정책과 제도로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여당의 총선패배는 경제정책에 뿌리내린 친자본·친기업 편향을 버리고 기울어진 정책 운동장을 바로 세우라는 최후통첩이다.
무너진 정책 신뢰에 보내는 불신임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