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 ‘트로피’. 여주 백웅미술관에서 2021년 열렸다.
최방식
완벽함은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이뤄진다던가.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현학이나 감정과잉을 줄이고 군더더기 없는 예술을 일컫는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할 때 간혹 등장한다. 제 작품을 '집중해 들을 필요 없는 음악'이라고 했던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도 같은 장르 예술가였다. 상징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김 작가는 '덜어내기'라 했다.
감정과잉 줄인 상징색 제한은 '덜어내기'
김 작가의 첫 개인전은 2011년 '공간가르기'. 벽면에 도자 새 80마리(작가 자신을 날개 하나뿐인 새로 표현)를 설치한 청년작가초대전(JH갤러리, 관훈동). 2·3회는 2012년 갤러리F9(통의동)에서 열린 '코발트블루'(인간 내면 희로애락 단색 표현)와 '검고희게'(코발트블루 연장전), 4회는 2020년 '플랫폼노동자'(여주시립미술관 려), 5·6회는 2021년(여주 백웅미술관)과 2024년(여주 도자문화센터) '트로피'와 '리바이벌 트로피'였다. 그룹전은 66회 가졌다.
그의 예술 시작은 의외였다. 서울태생인 그는 공고에서 요업(무기재료)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했다. 첫 취업을 예술가 공방에 했는데, 창작활동을 하며 민생고를 해결하는 길을 배웠다고 했다. 증조부가 부여에서 옹기장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는데, 도예 유전자로 보기엔 옹색했단다.
"아버지가 옹기장인 증조부 아래서 흙 밟는 일을 했다고 했어요. 그러다 쌀 팔아오라고 해 그 돈을 들고 서울로 튀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서울서 결혼까지 하고 부여에 내려갔는데, 증조부의 행방은 찾을 길 없고 조부모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는 공방을 다니며 미래를 고민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되는 중장비업을 물려받으라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당시 대구 지하철 사고로 2백여명이 죽는 걸 보며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제가 일하던 공방 예술가 둘이 여주로 내려왔어요. 한 분은 도예를 하고, 또 한 분은 조형을 했죠. 두 장르를 같이 해봐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그분들 따라 여주에 와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도예에 필요한 흙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요. 저도 짐 싸 들고 내려왔죠."
그는 앞으로 '소통하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간 일방의 예술을 해왔다면서. 첫 시도로 '광대' 소재의 개인전 '레드&레드'를 준비하고 있단다. 빨강 단색 실물 크기의 인체 조형물로 감정노동자의 아픔을 표현하려고 한단다. 여주 강천섬 야외전시장에서 올 10월 26일부터 1주일간 열 계획이다.
"광대를 제작 전시하고 관객에게 붓과 물감을 줘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형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어요. 눈으로만 보는 관람에서 작가의 작품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소통형 전시 및 예술을 해보려고요. 그간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던 걸 반성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