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한편 돈에 예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볼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일까? 홍세화의 자유론에서 계속 언급되는, '(돈과 권력 등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라는 표현에 직면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부분의 사람 마음속에서는 '맞아요, 진정한 자유인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와 '그래도 돈이 없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큰일 나는데요, 너무 이상적이시네요!'가 부딪칠 것 같다.
"우리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자유의 가치를 외면하거나 등한시해왔고 자유인의 의미를 치열하게 붙잡지 않았다는 점을.어쩌면 자유 개념을 빼앗긴 탓도 있겠지만, 자유의 가치와 자유인을 전면에 앞세우기가 버거워 민주화라는 방패 뒤에 숨었던 건 아닐까.
민주공화국은 자유로운 시민들을 주체로 하지 않을 때 빈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화를 통해 자유로운 시민을 형성한다는,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한 것인지 모른다."
그의 말은 어쩌면 이상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자유인이 될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준엄한 일침. 그래서 이 대목까지 오게 되면, 죽비 한 대를 맞은 기분이다.
지금, 다시 홍세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성찰하지 않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마치 자기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한국 사회. 2002년 한국으로 귀국한 '파리의 택시 운전사'가 20여 년간 그가 바라본 광경의 본질이다.
모두가 무엇이 문제인지 떠들기는 좋아하지만, 내 앞의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기꺼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의 예측대로, '한국 사회, 우리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그가 떠난 지금 다시 펼쳐 보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책의 이름대로 자유라는 핵심 가치의 '결'을 따라 항해하기 때문이다. 홍 선생은 자유에 대해 성찰하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가 관찰한 '진정한 자유가 결여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거쳐, 난민이라는 자신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렌즈로 하여 국내의 현실정치와 세계를 세세하게 살펴본다.
이 항해를 함께 하고 있으면, 서문에서 그가 자신의 글을 두고 '섬세하지 못한', '거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의아해질 따름이다. 그의 사유는 충분히 섬세하다. 또 그 섬세한 사유에 걸맞은 실천을 삶을 통해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독자적 진보정당이 사라진 총선 결과에 대해 소회를 묻는 질문에 진보정치에 삶을 바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렵잖아요. 예견됐던 일이고. 크게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이 책을 읽기 전에 인터뷰를 먼저 접했던 입장에서, 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이기에 나에게는 이 부분이 못내 섭섭한 답변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