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3월 2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다. OECD 평균의 4배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위험 사회다. 불평등 지수와 주당 노동시간이 제일 높고 빈부격차, 사교육비 지출, 술 소비량 또한 1위다. 게다가 노인빈곤율과 청소년 자살률, 낙태율, 저출산율, 이혼율, 흡연율, 간암 사망률, 당뇨병 사망률 모두 1위로 마찬가지다. 더구나 학교 교육비 가계 부담률과 대학 학비 민간 부담률, 그리고 여성 흡연율, 청소년 흡연율 모두 1위인 삭막한 국가다.
그 모든 부정적 통계 수치는 사회복지가 빈약한 데에서 비롯됐고 자살률, 저출산률, 사교육 부담률 모두 서로 깊숙이 연관돼 있다. 오늘날 의대 열풍과 N수생 현상도 복지가 형편 없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 극한으로 치달은 데서 초래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이 정책의제로 제기되고 기본소득당이 진보정당으로 등장한 현상도 이를 반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헌법 제1조에서 명문화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이 평등하게 다양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회이다. 공화주의 또한 공적 가치를 추구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다. 따라서 국가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인간다운 삶과 존엄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결코 시장에 내맡기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 그것은 이미 국가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거나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공공성 취약의 결과
북서유럽처럼 90% 이상이 국공립대학이고 대학 무상교육이 현실화된다면 사립대학 비리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학비를 벌려고 휴학을 한 채, 온종일 알바에 매달리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모두 교육의 공공성이 극히 취약한 결과이다. 오늘날 의대 정원 논란이 빚은 의료대란도 빈약한 의료의 공공성을 외면한 채, 의사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시장의 원리에 기초한 불통 행정이 자초한 업보다. 대한민국은 공공의료 비율이 OECD 꼴찌로 의료 공공성이 매우 취약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후퇴한 국가다.
실제로 2023년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가 남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공공의료 비중 추이'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공공병원(5.7%), 병상수(9.5%), 의사 인력(11.4%)이던 것이 2022년 말 기준 공공병원(5.2%), 병상수(8.8%), 의사 인력(10.2%)으로 역주행했다. 이는 OECD 공공병원(55.1%), 병상수(72%) 평균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조하고 민간 보험에 의존하는 미국보다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 당시 공공병원 의료진의 헌신과 분투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였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에서 응급실 뺑뺑이와 지역의료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단순히 의사를 의료시장에 많이 배출해서 해결하려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시장의 원리를 맹신한 채,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료시장에 의사 공급을 대폭 늘린다고 해서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시장의 원리에 내맡겨 버리면 의료서비스의 양극화 내지 불평등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공공의료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인 공공병원, 공공병원 병상수, 의사, 간호사 등 공공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마땅하다. 의료 공공성을 높여 나갈 때 의료 정책의 정치효능감을 높일 수 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소아과, 산부인과 심혈관외과 등 필수 의료 국가책임제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공공병원 비중을 프랑스의 절반인 30% 정도라도 확충하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 보시라!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치를 거론하며 마냥 의료계를 겁박할 일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한민국 의료 접근성은 탁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총선 앞두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 의사와 의대 교수들의 자존감을 짓뭉개고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추진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