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묘제를 지낸다. 묘제를 바라보는 아들, 제례복을 입은 아빠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아들의 뒷모습.
문수진
남편의 집안에서는 해마다 봄, 가을에 묘제를 지낸다. 며칠 전엔 종친회에 속한 부녀회원들이 제사음식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시어머니와 큰 형님이 대표로 갔다. 큰 형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가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묘제에서는 눈에 띄게 열심히 일을 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간단하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치우면 된다. 누군가 뭘 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대신해 준다. 쓰레기를 줍고, 그릇을 치운다. 천막을 걷고 과일상자를 차에 실었다.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빨간 고무대야 두 개에 물을 받았다. 나와 다른 집의 막내며느리가 자연스럽게 힘든 초벌설거지를 맡았다. 세제를 풀고, 제사 지낸 그릇들을 씻기 시작했다. 손목이 부러져라 박박 씻었다. 씻은 그릇을 옆에 있는 통에 넣으면,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이 헹궈서 소쿠리에 엎어 놓았다.
"삼촌, 제가 할게요."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일어나 빨간 고무다라를 손으로 잡는 게 보였다. 헹굼물이 가득해서 무거울 것 같았다. 서둘러 일어서며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분은 말없이 혼자 고무다라의 물을 비웠다. 나는 뻘쭘하게 서 있다가 다시 앉아 초벌설거지를 했다. 무거운 고무다라를 옆으로 기울이며,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삼촌이 아니구나.
그 후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가 맡은 일을 묵묵히 했다. 설거지가 끝나고, 호수로 물청소를 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씻어야 할 소쿠리를 들고 왔다. 그분이었다.
"저, 아까 죄송했어요. 삼촌이 아니라 형님인데. 제가 뭘 모르고 삼촌이라고 했네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삼촌이라고 하는 게 맞아. 그런데 요즘은 나이 70도 젊어서 웬만하면 형님이라고 하는 게 좋아. 물론 나도 나이가 들만큼 들었지만... 사실 아까 삼촌이라는 말을 살면서 처음 들었어. 가슴이 철렁하더라."
"어머.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절대 삼촌이 아니세요. 저는 그냥,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삼촌이라고 하는 줄 알고."
"그래, 그런데 웬만하면 형님이라고 해. 그게 서로 좋아."
"네. 형님. 그리고 다시 한번 죄송해요."
"아니야. 됐어."
느낌이 맞았다. 그분은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얼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땡'을 해주기 전까지 한두 시간 동안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마치 내가 결혼은 했지만 아줌마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듯이, 그분도 나의 삼촌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섰을지도 모른다.
삼촌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하는 형님들이 있다. 아무나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친근감이 형성되는 것도 아닐 테다(형님은 충성심을 요구한다).
삼촌과 형님 사이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불러주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상대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은 어떨까? 나이가 들어도 삼촌보다는 형님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이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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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토박이, 세 아이의 엄마지만, 밥하는 것보다 글쓰는 게 더 좋은 불량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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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삼촌도 삼촌이고, 모르는 사람도 삼촌인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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