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을 선택한 대신 청소하는 과정의 잠잠함과 끝난 후의 뿌듯함을 로봇에게 넘겨준 것 같다.
김현진
몇 년 전부터 남편은 로봇 청소기를 사고 싶어 했지만 나는 결사반대였다. 집에 기기를 들이면 소유의 기쁨보다 관리의 번거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서. 전자 제품은 전기 소비로 탄소 배출 증가에 기여할 테고, 궁극적으로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킬 거라서. 무엇보다 청소란 단지 집을 치우는 기능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깨끗이 하는 건 삶을 돌보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몸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여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듯, 머무는 공간을 아름답게 하여 삶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청소는 과정을 겪는 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청소하는 사이 변모하는 공간처럼 나의 내면에 잠잠한 변화가 일어난다.
손과 몸을 움직여 흐트러진 물건들의 자리를 찾고 더럽던 것들을 말끔히 하면 그 사이 내 마음도 공간처럼 변한다. 깨끗해진 시야처럼 복잡하던 머릿속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어 개운한 기분이 찾아온다. 스스로 해낸 일을 보며 자아 효능감을 높일 수도 있다.
청소하자는 나의 권유는 그런 가치를 공유하자는 제안이었는데.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고 회사 일이 바빠지고, 육아로 지치고 사는 일에 치이면서 내 말투가 바뀌었으려나. "청소하자"라는 다정한 권유가 아니라 "이것 좀 치워!"라는 잔소리 쪽으로 기울고 말았나. "우리, 청소할까?"라고 온화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남편이 로봇 청소기를 떠올리는 일은 없었으려나.
몇 년 동안 우리 집에서 로봇 청소기는 금지어 같은 것이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몇 안 되는 가치(환경 보호, 인간성 사수 등)에 여러모로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 이사를 계기로 식기세척기를 들인 후 그 마음이 서서히 흔들렸다. 집안 구석진 곳에서 혼자 설거지를 하면서 때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했는데, 그런 원망과 사소한 다툼이 앓던 이를 빼듯 단숨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봇 청소기 사 볼까?" 지난 겨울 지나가듯 흘린 내 말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청소기를 들였다. 청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후기도 많던데, 내가 마주한 로봇 청소기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걸레질까지 해주는 로봇 청소기 덕분에 우리 집에서 사라졌던 광(光)이 되살아났다.
"물땅아, 고마워. 네가 최고다 정말."
물땅이가 청소를 하려고 거실로 나오면 조금 감동스럽다. 나 대신 이토록 성실하게 청소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게. 물땅이가 청소하는 동안 불편한 마음 없이 편안하게 내버려 둘 수 있다는 게. 사람이었다면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그저 고마워만 하면 되어서 가뿐하다. 나의 수고란 물땅이가 가는 길에 놓인 자잘한 방해물을 없애주고 청소를 마치면 감탄해주는 정도.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무언가 소중한 걸 빼앗긴 기분이 드는 건. 편리함을 선택한 대신 청소하는 과정의 잠잠함과 끝난 후의 뿌듯함을 로봇에게 넘겨준 것 같다. "우리 같이 청소할까!" 외치던 주말 오전의 복닥거리는 즐거움과 내 공간을 내가 아껴준다는 자부심의 일부도.
하나의 신념을 고수하는 단호함은 지니지 못해 속으로 이런 갈등을 오가며 물땅이를 돌린다. 가정의 평화냐, 환경 보호냐, 인간성의 수호냐. 물땅이 덕분에 가정의 평화를 끌어올린 대신 환경 보호나 인간성 수호에서는 후퇴했겠구나. 갈등하는 인간이라서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패배감에 젖기도 한다.
로봇에게 내어줄 수 없는 것
모처럼 쉬는 날. 미루었던 옷장 정리를 했다. 아이 방 서랍장에서 작아진 옷을 골라내고 버릴 옷, 가까운 동생에게 물려줄 옷을 속았다. 남겨진 옷은 가지런히 개켜 긴 팔, 짧은 팔, 웃옷, 아래옷, 치마, 속옷으로 잘 분류해 다시 넣었다. 수납공간은 늘고 담긴 모습이 어여쁘니 아이가 좋아했다.
하는 김에 내 옷장과 신발장까지 정리했다. 빨아서 다음 계절을 위해 따로 보관할 옷, 버릴 것과 아직 입을 옷을 구분했다. 버릴 옷은 재활용 수거함으로 나르고 세탁할 옷은 옷감을 살펴 울코스로 세탁기를 돌렸다.
고르고 접고, 다듬어 제자리를 찾아주고, 빨고 널고 버리고 비우고. 천천히 손과 몸을 움직이고 나니 말끔해진 자리가 보였다. 개운하면서 뿌듯했다. 꼭 필요한 것을 골라내고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건 여전히 내 손으로만 가능한 일. 나만이 아는 쓰임과 가치를 분간하는 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세탁기 다 돌아갔다는 소리에 울코스로 돌린 포슬포슬한 니트와 원피스를 꺼냈다. 마루 바닥에 수건 한 장 깔고 젖은 니트와 원피스 반듯하게 접어 차곡차곡 쌓은 후 수건 한 장 또 덮어 발로 자근자근 밟았다. 어릴 적 사 남매 자라느라 넘쳐나는 빨랫감을 일일이 다리기 어려웠던 우리 집에서 엄마가 하던 방식이다.
자근자근 밟아 널면 다림질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반반하게 마른다. 마루 바닥에 앉아 젖은 빨래를 접고 수건 덮어 밟으며 엄마 생각하기. 그것도 물땅이는 못하지. 아니, 물땅이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지.
아껴 입는 옷들은 건조기 대신 내 손을 거쳐 건조대 위에 널린다. 여전히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마른다. 빨래 널고 개운한 기분으로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단순히 청소라고 치부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삶의 안팎에서 우리 손을 기다리는구나. 나만 알아볼 수 있고, 내 손 닿아 가지런해지는 일이. 잠잠히 쓰다듬는 손으로 나와 내 삶, 더 넓게는 지구까지 사랑할 수 있어 환하게 기쁜 일이.
내 손으로 보살펴 숨을 불어 넣는 일들을 찾아 실행하며 편리함을 향해 질주하는 삶에 때때로 제동을 걸어보고 싶다. 갈등하는 인간이라서 이런 저런 시도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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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로봇청소기라도 이건 대신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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