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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 못 쓰고 폰 충전도 못하다가... 이젠 '말대꾸' 합니다"

[N잡러 노조하다⑩] 청소노동자 희복씨가 노조에 가입한 이유

등록 2024.05.06 11:02수정 2024.05.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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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노동자로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편집자와 대리운전을 거쳐 현재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국 노동조합이냐고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기자말]
 희복씨는 회사 건물 안 청소는 물론 때떄로 시설 관리도 했습니다.
희복씨는 회사 건물 안 청소는 물론 때떄로 시설 관리도 했습니다. 픽사베이
 
올해 예순인 김희복(가명)씨는 청소노동자입니다. 그는 매일 오전 4시면 집을 나서 507번 버스 첫차에 오릅니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기업이 희복씨의 일터입니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2014년부터 청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청소노동자가 그렇듯 다른 직원들의 출근 전인 오전 6시부터 희복씨의 업무도 시작됩니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약 2시간의 오전 청소를 마치면 다른 직원들도 본격적으로 출근합니다. 그때쯤 희복씨는 잠시 휴게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오전 9시 30분부터 다시 노동을 재개합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10시간 근무하는 스케줄입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중간에 두 번의 휴식시간이 주어집니다. 치우고, 쓸고, 닦는 반복되는 고된 노동이지만, 희복씨는 이 일이 좋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근무 환경이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건데, 제대로 쉴 공간도 없고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했어요."
 

"시키면 무조건 해야죠"
 

희복씨는 이 기업에 직고용된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는 용역회사 직원인 하청노동자입니다. 원청인 회사는 하청회사와 3년에 한번 재계약을 합니다. 하청사가 교체되면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는 구조이지요. 윤석열 대통령도 지적하는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모순이 작동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선 현장 소장이나 관리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노동자 업무가 아니어도 관리자들이 시키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복씨는 회사 건물 안 청소는 물론 때때로 시설 관리도 했습니다. 겨울이면 눈을 치우고, 가을이면 주변 낙엽도 쓸어 담았습니다. 조경수 관리 등 시설 정비에도 동원됐지만 그렇다고 임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해야 하느냐' 등의 질문은 상상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하라면 해야 했습니다.

"사용자나 관리자들이 뭐라고 하든 대들거나 말대꾸하면 안 됐어요. 예전에는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그냥 쫓겨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러니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잘릴까 봐 눈치를 보며 일해야 했죠."

급여는 최저임금을 받았습니다. 일이 힘든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변변한 휴게실이 없어 휴식도 제대로 취할 수 없었습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엔 냉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여름이면 찜통이 됐고, 겨울이면 바닥이 얼음장이었습니다. 잠깐 몸 뉘어 쉴 수도 없었지요.


전기 콘센트도 없고 전기를 사용할 수 없게 해 휴대전화도 충전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원⋅하청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는 온수를 쓸 수 없게, 수도꼭지를 뽑아 놓기도 했습니다. 건물 내에는 직원 샤워실이 있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사용을 못 하게 했습니다.

"여름에 청소를 하고 나면 땀 범벅이 되는데 마땅히 씻을 곳도 없었어요. 샤워실이 있었지만 저희 청소노동자들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청소 일을 한다고 차별했던 거죠. 휴게실에 에어컨이 없어 너무 덥다 보니 청소노동자들은 건물 귀퉁이나 계단 같은 데서 쉬곤 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열사병으로 노동자가 쓰러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노조 만들었더니 따뜻한 물 나옵니다
 
 김희복씨(가명)는 매일 오전 4시면 집을 나서 일터로 향합니다.
김희복씨(가명)는 매일 오전 4시면 집을 나서 일터로 향합니다.픽사베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 불안, 관리자들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희복씨와 그의 동료들은 지난 2019년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리곤 생전 처음 원⋅하청을 상대로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벌였습니다.

처음으로 사용자들에게 '말대꾸'하며 대든 것이지요. 해고당할까 걱정도 됐습니다. 평생 노동자로 살았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사용자와 맞서는 '투쟁'엔 초보였기에 희복씨와 동료들은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간 당해온 세월 때문인지 노조가 결성되자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처음에 피켓시위나 선전전 같은 거 하고 이럴 때 겁도 나고 그랬죠.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다들 뭐라도 해야한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청소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서자 원⋅하청 사용자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원청은 노조가 결성되고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외부로 알려지자 곤혹스러워했습니다.

희복씨가 일하던 곳은 준공기업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정규직 직원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회사에서 하청 청소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을 주며, 비용을 아끼려 휴게실에 전기도 공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사측과 교섭을 통해 임금 인상을 비롯해 휴게실 냉난방기 설치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결국 노동조합은 요구를 대부분 관철했습니다. 그 덕에 청소노동자들은 드디어 냉난방이 되는 곳에서 휴식할 수 있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온수도 쓸 수 있게 됐고, 전기 콘센트도 설치됐습니다. 그간 있어도 쓸 수 없었던 사내 샤워실도 이용할 수 있게 됐지요. 소폭이지만 급여도 인상돼 최저임금에서 벗어났습니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 여러 근로조건이 개선됐지만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관리자나 사용자와 관계, 즉 노사관계입니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론 사용자들이 그런 짓을 함부로 못 해요. 관리자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런 갑질은 많이 사라졌어요. 노동조합 덕분에 노동자들이 인간적으로 대우 받게 됐습니다."
 

견디거나 나가지 않아도, 방법이 있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자들이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자들이 134주년 세계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희복씨와 동료들에게 노동조합은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노동자들은 모두 몸을 움직여 먹고삽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기계를 조립하든, 책상에 앉아서 사무를 보든, 아니면 희복씨처럼 청소 일을 하든 노동자들은 모두 제 노동력을 팔아 받은 임금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근무환경에서 얼마의 임금을 받고 어떤 일을 하는지, 즉 근로조건은 노동자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근로조건 개선이란 곧 삶의 질을 향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아무리 개인적으로 얘기해 봐야 바뀌는 게 없었어요. 오히려 얘기했다가 사용자에게 찍혀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어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간 근로계약이란,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위치에서 맺는 계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방적입니다. 계약 내용이나 근로조건이 못마땅하다면 현실에서 노동자 개인의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부당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을 참고 견디거나, 혹은 거부하고 제 발로 나가거나.

게다가 구조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온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이런 약점을 잘 알기에 때론 '계약 해지'를 운운하며 협박하고, 때론 '고용승계'로 어르며 권력을 유지합니다.

기울어진 권력관계 속에서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힘은 노동조합에서 나옵니다. 흩어진 개인이 아닌 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용자와 교섭하고, 그리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집합적으로 행동하는 것.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란 이름으로 보장된 헌법상 권리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의 의미는 생소할 수 있으나, 희복씨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노동조합은 반드시 있어야 해요. 투쟁하는 건 어렵지만,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절대 달라지지 않아요. 그게 아니면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참고 살던가, 아니면 회사를 나가야죠.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요?"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삶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일터에서 내밀리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부유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유목하지 않고 투쟁하며 정주하는 길, 그것이 희복씨가 몸소 경험한 노동조합의 길입니다.
#노조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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