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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 없이는 한 마디도 못한다는 가이드

동유럽 여행에서 체험한 로컬 가이드 동행 제도... 우리도 도입하면 어떨까

등록 2024.05.09 21:00수정 2024.05.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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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오늘 크로아티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 중의 하나인 '플리트비체'에 오셨습니다.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현지 로컬 가이드가 저희와 동행해야 합니다. 로컬 가이드 없이는 제가 한 마디도 할 수 없답니다."

결혼 30주년, 퇴직 기념으로 떠난 동유럽 여행 3일차에 도착한 곳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16개의 계단식 호수와 98개의 폭포로 구성된 이 공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천만 영화를 찍었던 <아바타>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한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16개 호수와 98개의 폭포로 구성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16개 호수와 98개의 폭포로 구성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고 있다.이호영
 
산 계곡 아래 이어진 호수는 16개. 물 색깔이 모두 옥빛을 띠고 있다. 석회암 지대인 이곳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산 허리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4월 계절 답게 나뭇잎이 푸르름을 더하고, 호수의 물빛은 푸르다못해 녹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이 국립공원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우리 일행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대부분 외국 단체 관광객이다. 한국 단체 관광객도 여러 팀 보이고 중국, 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호수를 돌며 연신 감탄에 흠뻑 젖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194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럽불곰, 늑대, 멧돼지, 사슴의 서식지라고 한다. 계곡 상류의 물이 여러 개의 호수를 통해 하류로 내려가면서 수많은 폭포를 만든다. 호수는 모두 나무테크 인도교로 이어져 관광객이 호숫가를 걸으면서 신비로운 자연을 만끽하게 된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호수 16개의 옥빛 호수가 이어지고 나무테크 산책길을 따라 호수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호수16개의 옥빛 호수가 이어지고 나무테크 산책길을 따라 호수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다.이호영
 
"오늘 저희들을 담당한 로컬 가이드는 이 마을 어르신입니다. 여기서 태어나 자랐고 은퇴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국립공원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답니다. 유럽의 가이드 제도 덕분에 지금까지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죠. 유럽은 인솔 가이드가 있어도 관광지역 현지의 로컬 가이드가 곁에 없으면 이곳 현지 면허가 없는 저와 같은 인솔 가이드는 관광지에 대해서 한 마디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로컬 가이드 없이 관광 설명을 하다가는 제 가이드 자격이 박탈당하고 벌금도 어마어마하게 물게 됩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왜 이처럼 아름다운가를 설명하던 우리 인솔 가이드가 한마디 덧붙이면서 하는 말이다. 한 시간 내내 호숫가를 돌면서 현지인인가 싶을 정도로 유창하게 설명하던 우리 가이드 곁에는 항상 현지 로컬 가이드가 서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웃으면서 관광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도 수십 년 활동한 전문 가이드이다. '안녕하세요' 정도의 한국어만 할 수 있고, 관광객인 우리도 크로아티아어나, 영어로 하는 설명을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 인솔 가이드가 설명할 수밖에 없기는 하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폭포 16개 호수에 98개 폭포가 있다. 상류부터 크고 작은 폭포가 호수를 따라 이어져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폭포16개 호수에 98개 폭포가 있다. 상류부터 크고 작은 폭포가 호수를 따라 이어져있다.이호영
 
플리트비체 관광 후 도착한 곳은 항구도시 '자다르'다. 역시 아드리아해를 품고 있는 이 도시는 파도가 오르간 소리를 내는 '바다오르간'으로 유명하다. 2005년 '니콜라 바시츠'라는 건축가가 만들었다. 대리석 계단 아래에 35개의 파이프를 설치해 파도가 파이프 안의 공기를 밀어내면서 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구조이다.

파도의 세기와 속도에 따라 소리의 음색과 강약이 다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해변가 대리석 계단에 앉아 파도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를 듣는다. "붕", "부-웅" 하는 소리이지만 바다가 들려주는 웅장한 소리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크로아티아 항구도시 자다르 자다르 항구에는 '바다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대리석 계단 밑에 묻힌 파이프에 파도가 드나들며 소리를 내는 구조이다.
크로아티아 항구도시 자다르자다르 항구에는 '바다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대리석 계단 밑에 묻힌 파이프에 파도가 드나들며 소리를 내는 구조이다. 이호영
 
"안녕하세요? 소피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오 필승 코리아, 축구 잘해요."


바다오르간과 세계 건축물 1001에 선정된 세인트 도나트교회, 성마리 수도원 등을 돌며 로컬 가이드가 우리와 동행했다. 물론 주요 설명은 우리의 인솔 가이드가 도맡았고 자다르 로컬 가이드는 태극기 문양으로 만든 우산을 들고 앞서서 길을 안내할 뿐이다.
 
자다르 항구 세인트 도나트교회 제일 앞에 태극 모양 우산을 든 사람이 현장 로컬 가이드이다.
자다르 항구 세인트 도나트교회제일 앞에 태극 모양 우산을 든 사람이 현장 로컬 가이드이다.이호영
 
필자는 4월 15일부터 26일까지 12일 동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비롯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등을 돌았다. 성당과 광장, 자연이 중세 시대 그대로 살아 있는 동유럽의 곳곳을 돌며 관광 설명을 들었다. 설명은 우리나라 인솔 가이드가 했지만 주요 관광지마다 현지 라이선스를 가진 로컬 가이드가 동행하는 유럽의 관광 정책이 흥미로웠다.
 
잘쯔부르크 미라벨 궁전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도레미송'이 불려진 곳.
잘쯔부르크 미라벨 궁전'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도레미송'이 불려진 곳.이호영

모차르트의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관광에도 어김없이 현지 로컬 가이드가 우리와 동행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도레미송을 부른 장면이 나오는 미라벨궁전, 모차르트 생가, 특이한 상점 간판으로 이름난 게트라이데 거리, 잘츠부르크 성 등을 같이 돌았다. 4월 하순인데도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강한 바람에 손을 '호호' 불면서 다녔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성 잘츠부르크 성 탐방. 맨 뒤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이 현장 '로컬 가이드'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성잘츠부르크 성 탐방. 맨 뒤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이 현장 '로컬 가이드'이다. 이호영
 
"로컬가이드의 수당은 얼마나 되나요?"
"1시간에 평균 80유로 정도이고 초과하면 초과 수당을 지급합니다."


1시간에 우리 돈으로 약 12만 원을 수당으로 지급한다는 얘기다. 로컬가이드 없이는 우리 가이드가 활동할 수 없는 구조이니,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관광객들에게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유산을 보여주고 덕분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안동에도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한 50여 분이 활동하고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형식이다.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등 주요 관광지 7군데에 배치돼 있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해설을 희망하거나 예약한 경우 무료로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유럽 현지 로컬가이드처럼 의무적으로 동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서울 가이드가 안동 하회마을에 와서 문화유적지에 대해 설명해도 제재가 불가능하다. 물론 안동 문화해설사가 서울 유적지에 가서 설명해도 법적으로 탈이 없다.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내려본 안동 하회마을 겨울 풍경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내려본 안동 하회마을 겨울 풍경이호영
 
서울 북촌, 전주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 등은 그 지역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이곳에는 실제 주민이 살고 있다. 그래서 몰려든 사람들과 소란, 불편한 교통 등으로 현지인과 관광객간 마찰이 심하다. 유럽은 이러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 현지인에게 로컬가이드 자격을 주거나 호수나 바다 유람선 운항권, 관광 매표소 취업 등을 주선하고 있다고 한다.

단체 관광객이 지역 관광지를 찾았을 때 로컬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동행하는 제도를 우리도 도입하면 어떨까. 요즘 해외 관광이 많이 늘어나면서 우리 관광객들도 외국에는 현지 로컬가이드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외국의 로컬가이드 동행이 이해된다면 우리나라 관광지에 대해서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로컬 가이드 동행은 지역 관광을 더욱 활성화하고 올바른 해설로 관광객의 충족도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지방 소멸시대에 지역을 살리는 제도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동유럽여행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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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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