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아이들(자료사진)
픽사베이
나는 내심 못마땅하긴 했다. 일단 내 눈에는 전혀 유익해보이지 않았다. 재밌으면서도 유익한 프로그램도 많을 텐데, 아이들은 하필 왜 저 프로그램에 빠진 걸까 의아했다.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무조건 유익한 것만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을 골라낼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싶었다. 또한 모든 과제를 수행하면 하고 싶은 대로 놀 수 있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두달쯤 되니 서서히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로블록스 보지 마'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그건 아빠의 약속 위반이었다. 아들이 언젠가부터 '죽었어'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했다. 딸도 따라 했다. '때려'라는 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실제 아들이 딸을 때리는 일도 벌어졌다. 정색하고 심하게 때린 게 아니라 장난이었지만 위험신호로 받아들였다.
2주가 더 지났다. 방에 들어가서 아이들 영상을 살짝 봤다. 극중 캐릭터가 도끼와 칼을 들고 있었다. 어두운 화면에 음침한 표정을 한 캐릭터가 '낄낄낄' 웃었다. 섬뜩했다. 이제 명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동생이 오빠에게 맞아 '앙' 하고 우는 일이 벌어졌다(실은 아주 살짝 맞았다, 마침 현장을 목격했다). 지금이 기회다 싶었다.
자기 전 아들을 따로 불렀다.
"아들, 요즘 이상해졌어. 아들은 꽃을 좋아하고 나비를 좋아하잖아. 그런데 언젠가부터 '때려'란 말을 많이 쓰기 시작했어. 실제 동생을 때리기도 하고. 왜 그런 것 같애?"
"(10초 정도 생각) 잘 모르겠어."
"아빠 생각엔 '로블록스'를 보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 그 전엔 그렇지 않았거든. 아들 생각엔 어때?"
"(30초 정도 뜸을 들인 뒤) 그런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묵묵부답)"
"아빠 생각에는, 때리지 않고, 거친 말 쓰지 않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고도 재밌는 동영상들이 있을 것 같다. 아들 생각은 어때?"
"(바로 대답) 그런 것 같애."
"그러면 앞으론 '로블록스' 말고 다른 동영상도 보자. 아들이 먼저 괜찮다고 생각하는 동영상을 찾아봐. 그리고 엄마한테 한 번 봐달라고 하고."
전쟁이 시작됐다
이 일 이후로 우리집에서 아들과 딸이 유튜브로 로블록스를 시청하는 일은 사라졌다. 아는 지인네 아들은, 고등학생 때 게임으로 인해 몇 백 만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엄마가 뒤늦게 알고서 그 돈을 갚느라고 허둥지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폰을 사용하는 연령은 점점 어려지는 중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을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몇 살 때 폰을 처음 사용했는지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빠른 건지, 늦은 건지 물었다. 늦은 거란다. 보통 몇 살 때 사용하는지 물었더니 초등학교 들어가면 보통 폰이 생긴단다. 빠른 애들은 유치원 때부터 사용한단다. 하긴 유치원생이 폰을 들고다니는 걸, 나도 보긴 했다.
요즘 세상에서 폰은 거의 만능이다. 폰이 생긴 아이들이 폰으로 게임을 하고 결제를 하는 걸 과연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막는다고 애를 쓴다고 한들 그걸 다 막을 수 있을까.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답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폰과의 전쟁, 게임과의 전쟁, 영상물과의 전쟁이 이제 시작된 듯 싶다.
한편, 어쩔 수 없이 휴일 내내 집에 있는 경우엔 가족들 모두의 동영상 시청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최근엔 새로운 규칙을 정했다. 휴일엔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 평일엔 1시간으로. 아마 이런 식의 규칙은 앞으로도 계속 그때 그때 바꾸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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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이것'만 보는 아이들... 결국 따로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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