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힘> 표지
송송책방
만화가 마영신이 최근에 두 편의 만화책을 선보였다. 〈호도〉(2024, 송송출판)와 〈아날로그의 힘〉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따지자면 〈호도〉는 그의 순수 작품이 아니다. 과거 〈너의 인스타〉(2020, 송송출판)에서 마영신이 글을 쓰고 반지수가 그림과 만화를 담당했던 것처럼, 역으로 〈호도〉는 언경 작가가 원안(原案)을 제공하고 마영신이 그림과 만화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영신의 재치가 자연스럽게 텍스트에 녹아들 수밖에 없겠지만, 〈호도〉에 숨겨진 어둡고 침울한 작가탄생 서사는 마영신의 사적인 고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언경 작가의 표정에 가깝다.
즉, 〈아날로그의 힘〉에 적힌 "사람들이 겪은 이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저자가 애정이 가는 인물이나 사건에 감정 이입해 '마영신 버전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여기서 '이상한 사람'이란 코믹하고 특별한 사람부터, 상처 입고 고독한 사람까지 다양한 인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니 '이상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작가는 연기자처럼 매번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니까.
이처럼 마영신은 '되기(become)'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창작 엔진을 가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작가는 가슴 아픈 사연이나 사고에 대해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마영신의 이 발언은 의미 있는 행보로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그가 어떤 인물을 그리고 짓고 상상하고 종결짓는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최근 창작 동향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그의 신작 중 독자들에게 웹툰으로 선보인 〈호도〉를 제외한 〈아날로그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아날로그의 힘〉의 의미
마영신의 〈아날로그의 힘〉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라는 개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말하는 내용과 반대되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비유적 표현"인 아이러니 개념을 이해하고 있으면 그의 작품을 심도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아날로그의 힘'으로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장편이 아닌 단편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 〈아날로그의 힘〉은 단편이다. 그렇다면 제목이 의미하는 표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마영신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상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넌지시 이야기해 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우선, 이 작품에서 '아날로그'라는 상징은 창작의 영역에서 화두가 되는 인공지능 기술과 무관하지 않다. 굳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 속에 깊이 침투되고 있음을 의심할 사람은 이젠 없다. 급속도로 우리 삶 속에 흡수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일자리가 축소되는 것뿐만 아니라, 아우라가 존재하는 예술의 영역마저도 새로운 기술에 압도되어 예술가의 '쓸모'가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진 공모전(2023 소니 월드 사진 어워드)에서 보리스 엘다크센(Boris Eldagsen)이라는 작가의 경우, AI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작품을 공모전에 제출한 후, 입상해 수상을 거부한 일이 있다. 소설가 구단리에는 AI가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인공지능 기술의 도움을 받아 17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니 예술가의 쓸모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책 제목에 사용되는 '아날로그의 힘'은 기술 문명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암묵적으로 겨냥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의 힘〉은 이런 표면적인 의미 재현에 있지 않다. 오히려 만화가 마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날로그로 그림을 그리는 수상하고 이상한 어느 한 인물을 통해, '아날로그의 힘'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에 있다.
이 과정을 응시하고 있으면 인공지능 기술보다는 '아날로그의 힘'이 왜 중요한지 기괴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의 묘미이자 이 작품에 대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날로그의 힘'
이 작품의 주인공 윤희진은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어쩌다 보니 집에 갈 수 있는 막차를 놓치게 되고 갈 곳이 없었던 희진은 친한 언니의 가게에서 신세를 진다. 이 둘은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편히 쉰다. 그리고 다음 날 헤어진다.
며칠 후, 희진은 언니에게 어느 한 낯선 남성이 가게 문 밑으로 '편지'와 먹거리를 놓고 갔다는 섬뜩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누구일까. 얼굴 형체가 가려져 CCTV로도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