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미사를 드리던 신부의 모습을 동경하던 하 신부는 그 결심을 따라 가톨릭대학교의 학부·대학원을 거쳐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임석규
통영 출신의 하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다녔다. 그의 세례명은 로마 시절 교회 지키기에 힘쓴 레오 대교황을 본받은 '레오'였다. 어릴 적 미사를 집례하는 신부(사제)들을 보며 '아,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하느님을 받드는 사제가 되고 싶어'라는 그 뭉클함이 지금의 자신을 이끌었다고 하 신부는 쑥스럽게 고백했다.
그래서 하 신부는 전례를 돕는 복사 활동을 거쳐 예비 신학생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부로 진학한 뒤 부산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2003년에 성품성사를 받아 정식으로 사제의 삶을 살게 됐다. 이후 하 신부는 경상남도 중·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마산교구로 발령받았다.
어찌 보면 신부로서 정석 중의 정석 과정을 밟았던 하 신부였다. 그런데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빈곤에 처한 서민들의 삶과 하느님의 복음과 사회의 정의에 합당치 않은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도 두었다. 특히 그가 성품을 받은 2003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신효순·심미선 학생이 미 육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미국·미군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한 사제단의 전국 순회 미사에 하 신부도 함께했다. 하 신부는 "그 미사를 통해 '사제단이야 말로 사제직 수행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라는 마음을 가졌고,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사제단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제단 일원이 된 하 신부는 특히 그가 속한 마산과 그 일대 지역들의 사회문제 현장에 직접 달려갔다. 지난 2006년 구산면 수정만이 일방적으로 일반산업단지로 용도가 바뀌어 STX가 조선소 개발에 착수하자, 지역민들과 수녀들이 4년간 조선소 건립 반대 활동에 나섰다.
당시 하 신부도 이들과 함께하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아합의 나봇 포도밭 침탈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외쳤다. 또 민영화를 반대한 거제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투쟁과,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 반대에 동참하며 사제단으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국기도회를 위해 발로 뛰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