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은 언제든 앞장서서 '윤석열 물러나라' 외칠 것"

[인터뷰] 하춘수 레오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통일위원장)

등록 2024.05.27 10:17수정 2024.05.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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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어언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윤 정권의 2년을 돌아보면 '국정 전반의 후퇴'로 점철됐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이태원·오송 지하차도 참사, 한·미·일 군사동맹을 바라보는 굴종외교,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에 대한 묵인, 검찰독재, 야당 정치인들부터 시작해 서민들까지 강요된 '입틀막'... 이러한 윤 정부에 앞장서서 비판한 곳은 종교계, 특히 천주교계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아래 사제단)은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를 훼손한 윤 정권의 퇴진을 흔들림 없이 외쳤다. 시국기도회에는 그리스도인들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시민·야권 정치인 및 사회적 참사 피해자(유가족) 등이 함께했다.

이 거대한 대오 속에 하춘수 레오 신부(마산교구 회원동성당)가 있었다. 장소 섭외부터 강론(설교)·주례 등 다양한 실무를 감당한 하 신부는 기도회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늘 분주히 움직였다. 기도회가 폐막한 지 한 달 후, 지난 4월 17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마산 회원동성당에서 하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부가 되고 싶던 소년, 사제단과 함께 역사의 격랑기 속으로
 
 어린 시절부터 미사를 드리던 신부의 모습을 동경하던 하 신부는 그 결심을 따라 가톨릭대학교의 학부·대학원을 거쳐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어린 시절부터 미사를 드리던 신부의 모습을 동경하던 하 신부는 그 결심을 따라 가톨릭대학교의 학부·대학원을 거쳐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임석규
 
통영 출신의 하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다녔다. 그의 세례명은 로마 시절 교회 지키기에 힘쓴 레오 대교황을 본받은 '레오'였다. 어릴 적 미사를 집례하는 신부(사제)들을 보며 '아,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하느님을 받드는 사제가 되고 싶어'라는 그 뭉클함이 지금의 자신을 이끌었다고 하 신부는 쑥스럽게 고백했다.

그래서 하 신부는 전례를 돕는 복사 활동을 거쳐 예비 신학생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부로 진학한 뒤 부산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2003년에 성품성사를 받아 정식으로 사제의 삶을 살게 됐다. 이후 하 신부는 경상남도 중·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마산교구로 발령받았다.

어찌 보면 신부로서 정석 중의 정석 과정을 밟았던 하 신부였다. 그런데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빈곤에 처한 서민들의 삶과 하느님의 복음과 사회의 정의에 합당치 않은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도 두었다. 특히 그가 성품을 받은 2003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신효순·심미선 학생이 미 육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미국·미군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한 사제단의 전국 순회 미사에 하 신부도 함께했다. 하 신부는 "그 미사를 통해 '사제단이야 말로 사제직 수행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라는 마음을 가졌고,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사제단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제단 일원이 된 하 신부는 특히 그가 속한 마산과 그 일대 지역들의 사회문제 현장에 직접 달려갔다. 지난 2006년 구산면 수정만이 일방적으로 일반산업단지로 용도가 바뀌어 STX가 조선소 개발에 착수하자, 지역민들과 수녀들이 4년간 조선소 건립 반대 활동에 나섰다.

당시 하 신부도 이들과 함께하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아합의 나봇 포도밭 침탈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외쳤다. 또 민영화를 반대한 거제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투쟁과,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 반대에 동참하며 사제단으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국기도회를 위해 발로 뛰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기도회의 첫 시작은 지난해 3월 20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의 시국미사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기도회의 첫 시작은 지난해 3월 20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의 시국미사였다.임석규
 
사제단은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묵인 등 국정운영의 후퇴를 규탄하며, 지난 2023년 3월 21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검찰독재 타도와 매판매국 독재정권 퇴진 촉구 시국미사'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매월 월요일에 전국을 순회하며 시국기도회를 진행했다.

이 시기 비상대책위원회 총무를 담당했던 하 신부는 "이번 시국기도회는 사제들이 교회와 사회의 정의를 위한 헌신을 할 수 있도록 시편 72편 2절과 여호수아기 3장 6절을 주제로 잡았다"면서, "최초의 천주교 순교 터 전동성당 앞 풍남문 광장으로 장소를 잡은 것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윤 정권에 맞서는 첫 기도회란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국미사 후 사제단은 한달에 평균 2번 매 월요일마다 기도회를 열었다. 천주교를 포함한 개신교·성공회·정교회 등 그리스도교는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기에 그 다음날 바로 기도회를 진행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특히 윤 정권 시기의 사제단은 시국미사 직후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윤 정권이라는 난국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리고 송년홍 타대오 신부를 비대위원장으로, 또 하 신부를 비대위 총무로 선출했다.

하 신부는 지난해 11월 27일 사파동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윤 정권을 겨냥해 "지난 대선서 0.7%p로 간신히 이긴 것 때문이라도 더욱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매력적으로 보이는 강대국들의 힘에 따르다보면 무력과 무력이 부딪히는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론했다.
 
 지난해 6월 5일 인천 주안1동 성당에서 열린 시국기도회에는 700여 명의 천주교인·시민들이 모여 윤석열 정권을 향해 퇴진을 외쳤다.
지난해 6월 5일 인천 주안1동 성당에서 열린 시국기도회에는 700여 명의 천주교인·시민들이 모여 윤석열 정권을 향해 퇴진을 외쳤다.임석규
 
그러나 시국기도회가 늘 순조롭게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천주교계의 극우단체로 알려진 집단은 기도회가 열리는 성당·광장에 찾아와 사제들과 참석자들에게 폭언·물리 충돌까지 저지르기도 했다는 게 하 신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7월 3일에 예정됐던 부산교구 시국기도회도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하 신부는 "기도회를 준비하는 신부들도 정치적 발언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의무가 아닌가"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기도회는 지난 4월 18일에 막을 내렸다. 하 신부는 "원래 시국기도회는 지난해 8월 15일에 폐막하기로 이미 결정이 됐는데, 참석자들의 뜨겁고도 강한 의지에도 윤 정권이 요지부동해 '다시 한번 우리의 목소리를 윤 정권에게 들려주자'라는 논의를 거쳐 10월 초 부산에서 시국기도회 2기가 열렸던 것"이라 설명했다. 1년간 함께했던 신도·시민들은 폐막 소식에 아쉬워했지만, 긴 시간 동안 각종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장서 준 사제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지난해 8월 15일 서울시청역-숭례문 앞 대로 일대에서 열린 시국기도회 전 참석자들이 기도회 장소를 봉쇄한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15일 서울시청역-숭례문 앞 대로 일대에서 열린 시국기도회 전 참석자들이 기도회 장소를 봉쇄한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기도 했다. 임석규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기도회를 집례했던 사제들도 휴식기를 갖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시국기도회의 끝이 아니라고 하 신부는 강조했다. "윤 정권의 폭정에 민중의 피눈물과 탄식이 그치지 않는다면, 사제들은 언제든지 달려가 쓰러진 이웃들의 손을 맞잡아 주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윤석열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행렬에 가장 먼저 앞장설 것"이라고. 하 신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결기가 묻어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국기도회 #하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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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전공한 (전)경기신문·에큐메니안 취재기자. 시민사회계·사회적 참사·개신교계 등을 전담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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