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혜로부터 자금 요청을 받은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2018년 12월 초 이 사실을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에게 알려주면서 국정원에도 돈을 해줄 수 있는지 타진했다. 사진은 2022년 6월 안 회장의 모습이다.
윤종은
변론요지서에 기재된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실장을 겸임한 김성혜는 2018년 12월 1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을 중국 심양공항에서 만나 아래와 같이 말한다.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상황이 어렵다. 시범농장 사업을 추진해야 하니, 200~300만 달러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
이 상황만 놓고 보면 검찰 주장대로 '경기도가 북한과 맺은 스마트팜 사업이 진척이 안돼 북이 빠르게 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 공소장에 "UN 및 미국의 대북 제재 등으로 인해 북한에 약속한 미화 500만 달러 상당의 스마트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2018. 10월에서 11월경 김성혜로부터 미화 500만 달러의 지급을 수회 독촉받고, (이화영은) 김성태에게 경기도의 지원 하에 대북사업을 진행하라고 권유하면서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해 달라고 요구하였다"라고 기재했다.
그러나 이 전 부지사 측 김현철 변호사는 "2018년 11월경 이화영이 김성혜로부터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의 지급을 수회 독촉 받았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김성혜는 황해도 시범농장 비용 200~300만 달러를 이화영 대신 안부수에게 부탁했으며, 이 시기 이화영은 김성혜를 만난 사실도 없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018년 11월 말은 김성혜가 성사시킨 하노이 회담을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회담이 성공하게 되면 대북제재는 완화될 것이고, 회담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공통된 시각이었다"면서 "김성혜가 안부수에게 말한 200만 달러는 황해도 시범농장 비용이 아니라, 북미회담 진행을 위한 거마비로 보아야 한다. 국정원 직원의 지적처럼, 우리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북한은 자기 부서의 사업비용을 스스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부수, 국정원에 "돈 해줄 수 있냐"... 거절당하자 "쌍방울에 이야기할까"
그렇다면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는 왜 김성혜가 안부수에게 요청한 200만 달러의 성격을 검찰과 다르게 판단했던 것일까? 결정적으로 안부수가 처음 이 사실을 전하며 돈을 부탁한 대상이 이화영(경기도)이나 김성태(쌍방울)가 아니라 김씨 자신(국정원)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래는 김씨의 비공개 법정 진술 중 일부다.
"2018년 12월 초 안부수가 김성혜 일행을 만나고 한국에 돌아와 '김성혜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내가 자금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라고 안부수한테 임무를 줬다. 그러던 차에 안부수가 뚱딴지 같이 나한테 '돈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말 같지 않은 이야기 하지 말아라. 국가기관에서 돈 한 푼 쓰려면 얼마나 복잡한데, 그리고 한두 푼 가지고 될 것도 아닌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우리(국정원) 사업을 위해서 김성혜를 살리는 것도 좋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고 되는 것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안부수가 혼잣말 비슷하게 '쌍방울한테 이야기할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정색을 하면서 '기업체한테 돈을 달라고 그래? 그건 말이 안 된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일축했던 게 기억난다."
증언대에 선 김씨는 "(당시에) 나는 2018년 11월 말에 김성태 회장이 심양에 (안부수와) 같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안부수와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진행된 뒤인 2019년 1월 17일 쌍방울그룹은 조선아태위와 희토류 채굴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몇차례에 걸쳐 쌍방울에서 북한으로 돈이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