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0. 성공회대학교 학생회관 앞, 제1회 성공회대학교 미니퀴어퍼레이드
회대알리 권동원 기자
6월은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이 시기를 맞아 퀴어퍼레이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왜 이 시기일까? 1969년 6월, 미국에서 있었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시기 미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경찰은 성소수자들의 모임 공간이었던 스톤월 주점을 단속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시작됐다. 작은 주점에서 시작된 항쟁이 점차 거리로, 도시로 확산됐다. 이듬해 세계 최초의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역사적 기원과 '자긍심'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퀴어퍼레이드는 혐오와 낙인으로 행해지는 비(非)가시화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시는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고, 토론회나 강연회를 위한 각종 장소 대여도 거부했다. 지난해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던 회의에서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한 위원은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권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노퀴어존'을 선언하는 듯하다. 사실 퀴어퍼레이드는 서울시가 핵심 비전으로 내건 '약자와의 동행'의 가치를 너무나 잘 실현할 수 있는 행사다. 하지만 서울시는 정확히 '역행'하고 있다.
'미니'퀴어퍼레이드의 탄생
지난해 6월 20일, 성공회대학교 교정에서 제1회 미니퀴어퍼레이드(아래 회대 퀴퍼)가 열렸다. "우리의 광장은 열려 있다"는 구호를 내건 회대 퀴퍼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연대 성명이 축적되는 속도와 함께 왜곡과 오해도 무럭무럭 자랐다. 특히, 서울퀴어퍼레이드(아래 서울 퀴퍼)를 성공회대학교에서 개최하려고 한다는 오해는 치명적이었다. 연명을 요청하는 성명서에 서울시가 내린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에 대한 강한 규탄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회대 퀴퍼 기획은 '어떻게 오해와 낙인으로부터, 위협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축제 주최와 대상은 오로지 성공회대학교 학생으로 제한하고 기자회견도 최대한 소란스럽지 않게, 시험 기간에 공부하는 학생들을 방해하지 않는 일정으로 조정하겠다고 약속하고 이행했다. 완곡한 단어들을 선택했고, 당사자의 직접 발화보다는 교수 인터뷰 등을 통한 간접 발화로 우회했다. 모든 선택의 목적은 낙인 회피였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부른다. 우리는 분명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학교에서 살고 공부하며 일하는 기획단은 퀴어와 앨라이(Ally, 동맹·협력자 등을 뜻하는 단어로 동맹을 맺다, 연대를 맺다라는 뜻이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가 대체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공간에서 지워지는 일은 생존의 질문을 부르는 일이다. 사랑하거나 놀거나 요구할 거라면 '①당신들끼리 ②조용히 ③안 보이는 어느 구석에 가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사실상 공공장소에서 사라지라는 명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피해서 존재하라는 오만한 혐오다. 당신이 명령하든, 청유하든, 간청하든 '내가 보기 싫으니까 공공장소에서 사라지라'는 요청이 혐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길에 나오지 못하는 퀴어, 지하철을 탈 수 없는 장애인, 카페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어린이, 인권 조례를 빼앗긴 청소년. '꼴 보기 싫게 거슬리는' 존재는 광장에서 탈락한다. 서울시가 나서서 약자의 존재를 삭제하며 길거리의 성역화에 앞장설 때, 서울시가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한다. 나도 모르는 새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나 싶어 국어사전에 '동행'을 검색해 본다.
모순의 숲, 퀴어퍼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