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인문대에서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 겸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장이 입장문을 읽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정부가 수험생들의 한탄을 듣기라도 한 걸까. 지난 30일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가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신입생 모집 정원의 거의 30%에 육박하는 숫자를 무전공으로 선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의대 증원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와중에 은근슬쩍 끼워 넣은 듯한 모양새다.
아이들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지금도 웬만한 상위권 대학마다 개설된 자유전공학부의 '시즌 2'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자유전공학부는 대학 진학 후 실질적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여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10년부터 운영된 제도다. 통섭 교과와 융합형 인재 양성 등이 교육의 화두로 떠오르며 빠르게 확산됐다.
실제로도 이름만 바뀌었을 뿐, 무전공과 자유전공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지금껏 신입생 모집 정원의 10%에도 훨씬 못 미쳤던 무전공 선발 인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건, 기존의 자유전공학부 운영에 대해 정부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전공의 장벽이 허물어져야 미래를 선도할 인재가 양성될 수 있다고 부르댈 뿐이다.
듣자니까, 일부에선 아예 대학 내 전공을 구분하지 말고 전체를 무전공으로 선발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위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무전공 선발의 확대야말로 교육개혁을 위한 첫 단추라고 단언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교육 선진국의 해바라기'를 자처하는 그들에게 우리의 남루한 교육 현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통계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만, 무전공 선발의 확대는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필연적이다. 취업률이 낮은 비인기 학과는 통합되거나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지금 우리는 인문학이 퇴출되고,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다.
자유전공학부라고 쓰고 '로스쿨 대비반'이라고 읽는다는 볼멘소리마저 들린다. 이러다 끝내 대학에서 살아남을 전공은 단 둘뿐이라고 말한다. 문과 계열에선 로스쿨, 이과 계열에선 '의치한약'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이를 조선시대 '반상제'에 비유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둘만 '양반'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놈'이라는 자괴감의 발로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서 가장 어이없는 건, 정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방침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숫제 '이렇게 뽑을 테니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대학이 '갑'이고, 고등학교가 '을'이라는 걸 정부가 공인한 셈이다.
당장 현행 교육과정과 대입 전형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기초적인 인식조차 없는 듯하다. 그러잖아도 지금 학교는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라'는 교육과정의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수능의 막강한 영향력은 그대로 둔 채, 내년에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다. 말 그대로,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는 거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전공 선발 확대에 대비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현행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대학마다 가장 중시하는 평가 기준이 이른바 '전공 적합성'이다. 수험생의 적성과 역량이 전공 공부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무전공 선발이라면 아예 평가 기준조차 될 수 없는 항목이다. 진학 지도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을 다시 써야 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과목이 세분화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손볼 생각은 하지 않고, 통섭과 융합 운운하며 대학 전공의 벽을 허물자는 정부의 '즉흥성'이 놀랍다. 중고등학생 시절 진로 탐색의 기회를 넓힌다며 시행된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제'에 대한 평가와 환류 작업은 온데간데없는데, 무전공 확대로 대학 신입생에게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 자체가 황당하다.
교대와 사범대의 교사 양성 과정과 초중고 교육과정, 대입과 대학의 학과 운영 등은 오차 없이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톱니바퀴와도 같다. 그만큼 교육 정책은 치밀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중장기적 계획은커녕 뻔히 보이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묻고 더블로 가는' 정부의 막무가내 교육 정책이 불안불안한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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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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