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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의 초등학교, 영국은 이렇게 살려냅니다

구성원 41명의 학교가 179년 간 유지된 이유... 어려서부터 배우는 기부와 나눔 문화가 부럽다

등록 2024.06.08 11:06수정 2024.06.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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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3년 되었습니다. 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먹아트 초등학교의 바비큐 파티
먹아트 초등학교의 바비큐 파티제스혜영
 
지난 토요일, 8살 아들이 다니는 먹아트(Muckhart) 초등학교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아쉽게도 스코틀랜드의 정부 지원만으로는 학교를 운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립학교마다 학부모들 중심으로 펀드레이징(모금) 행사를 한다.

매년 봄마다 열리는 이 바비큐 파티도 학교 모금을 위한 행사였다. 냉랭하게 바람이 많이 불었던 작년과 달리, 이번 파티는 날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한 사람당 5파운드(약 8700원)를 내면 여기에 입장료와 바비큐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바비큐 파티라 하면 그릴에 직접 구운 햄버거와 소시지가 대표 메뉴다. 그 외에 차와 케이크, 장난감, 화분 세일의 가판대가 있고 물에 둥둥 떠 있는 오리를 잡는다거나, 코코넛 던지기 등의 게임 가판대도 보였다. 페이스페인팅이나 축구, 점핑캐슬 등 뭐든 원하는 걸 하려면 1~2파운드, 한화로 약 1740~3480원 정도를 지불하면 된다. 

학부모들은 바비큐 파티 전날부터 손놀림이 바빠진다. 제일 먼저는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한 학교 정원부터 정리하게 된다. 보통 아이들과 함께 잡초를 뽑거나 나무 가지치기를 한다. 각각의 가판대를 위한 가지보(gazebo, 비를 막아주는 임시용 정자)를 설치하고 학교에 있는 탁자와 의자를 학교 정원에다 옮겨두었다. 

파티를 위한 준비는 집에서도 계속된다. 바비큐와 같이 곁들여 먹을 파스타, 야채샐러드나 가판대에서 팔게 될 케이크, 쿠키, 빵을 만들고 필요 없지만 새 장난감이 있거나 화분 같은 것도 바리바리 쌌다. 아이와 함께 준비하느라 즐거운 시간이었다. 

학교 모금을 위한 바비큐 파티
 
 먹아트 초등학교 바비큐 파티
먹아트 초등학교 바비큐 파티제스혜영

나는 이날 빅토리아 케이크와 김치, 쿠스쿠스 샐러드를 만들어 갔다. 엄마, 아빠들이야 당연히 아이와 학교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고 하지만, 내가 놀라웠던 것은 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 모습이었다. 

열 세살에서 열 다섯 살 사이 일곱 명의 졸업생들. 이들은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팔거나 축구, 페이스페인팅, 네일 아트를 하며 봉사했다. 무려 네 시간 동안 이어진 파티였지만 어느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매대에 사람이 없으면 다른 매대에 가서 일을 도왔고, 잔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차나 커피를 마시겠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땀과 시간, 정성과 열정을 다 녹아 부어 시작했던 바비큐 파티로 약 1000파운드(한화 174만 원) 정도가 모아졌다. 바비큐 파티는 일시적인 모금이지만, 학교를 위한 모금 행사는 바비큐 파티만이 아니라 1년 내내 상시 계속된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들로 말이다.
 
 학교 앞 의류 재활용품 함
학교 앞 의류 재활용품 함제스혜영
 
첫째, 안 입는 옷이나 안 쓰는 가방 재활용하기. 학교 정문 옆으로 의류수거함이 크게 놓여 있다. 더 이상 몸에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나 신발, 가방을 통 안에 넣으면 무게에 따라 돈으로 환산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수거함이 비워졌을 때 514kg의 의류들이 모여 있었고 학교는 58파운드(약 10만 2000원)를 벌었다. 

둘째, 라플(Raffle) 티켓 팔기. 라플은 쉽게 말해 모금 복권을 뜻한다. 학교 발표회나 마을의 특별 행사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라플 선물 증정식이다. 행사 전 아이들에게 라플 티켓을 사도록 권장한다. 한 장당 1파운드.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에게 이 티겟을 팔게 된다.


각 라플 티켓마다 번호가 있고 발표회나 행사 당일에 라플 티켓을 무작위로 뽑아서 그 번호를 가진 사람에게 라플 선물이 돌아간다. 물론 모든 선물도 학부모들이 준비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 때 라플 티켓으로 300파운드(약 52만 1800원)가 기부되었다.
 
 한 장 당 1파운드(1,700원) 하는 라플 티켓.
한 장 당 1파운드(1,700원) 하는 라플 티켓.Amazon.co.uk/RaffleTicket
 
셋째, 학교 가든 오픈 데이. 매해 8월이 되면 학교 정원을 지역 주민들에게 오픈하는데, 여기서 모금이 이뤄진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도 학부모도 함께 가든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고 꽃을 심고 나무를 정돈하며 정성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학교만의 정원을 만들고, 모금도 하는 것. 작년에 열었던 가든 오픈으로 496파운드(약 86만 2730원)가 모여졌다. 

넷째, 크리스마스 카드 팔기.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4.95파운드(8600원, 12장의 카드와 봉투)로 판다. 생일이나 기념일,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보편화된 영국에서의 카드 판매는 기부가 필요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아이템 중 하나다. 카드 판매로 115파운드(약 20만 원)를 벌었다. 
 
 부모들이 준비한 라플 선물
부모들이 준비한 라플 선물제스혜영
 
전교생과 교직원을 합쳐 41명의 작은 학교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먹아트(Muckhart)이라는 마을에 있다. 280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전체 학생과 교직원을 합쳐서 마흔한 명이 전부다.

안 그래도 정부의 재정이 빠듯한 공립학교에서, 학생 수에 따라 지급되는 정부 재정으로 먹아트 초등학교는 폐교할 위기에 처해있다. 눈 깜박할 사이면 쉽게 지나쳐 버릴 정도로 건물마저 아주 조그만 이 학교가 폐교되지 않고 179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단 하나, 학교를 사랑하는 아이와 학부모들, 학교에서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 픈 졸업생들과 학교가 잘 되길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십시일반 모여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으로 아이들이 가고 싶은 여행도 보내주고, 읽고 싶은 책을 사 주는 것. 모금을 통해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컴퓨터나 아이패드를 공급해 주려는, 이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인 덕분이었다.

주민과 손님들의 모금과 기부 방식, 이건 오히려 한 사람이 큰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훨씬 민주주의적인 방식인 것이다.

영국의 '아름다운 재단 기부문화' 연구소에 따르면 영국은 16만 5000개의 등록 단체와 약 80000개의 미등록 자선단체가 있다. 이들은 연간 680억 파운드의 수입이 발생하고 이중 200억 파운드, 한화로 약 35조 1450억 원이 국제구호에 쓰이고 있단다. 

여기서 가까운 스털링이라는 도시만 가도 옷, 책, 물건 등이 재활용되어 다시 싸게 팔리는 자선단체 상점들만 열 군데나 된다. 영국 국민이나 나라만을 위한 자선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위한 자선 단체가 있다는 걸 보면, 이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는 '펀드레이징'의 힘, 모금과 기부의 힘을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추억 만들며 기부까지, 한국도 해보면 어떨까 

사실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나는 이런 모금행사가 너무 낯설었다. 학부모들에게 부탁하는 글이 두 달에 한 번꼴로 올라오는 게 별나게 느껴지고 귀찮기까지 했다. 왜 내가 만든 케이크를 내가 사서 먹어야 하고 아이가 만든 카드를 내 돈 주고 사 가야 하는지, 그게 싫기까지 했다. 

그런데 직접 참여를 해보니 나부터 달라졌다. 기적은 순전한 바람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평생에 한 번 있을 아이의 어릴 적 기억, 커서도 그때만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힘이 닿는 데까지 말이다. 이런 행사는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다른 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뜻깊은 행사다.

전세계적인 인구 감소의 추세로, 한국도 폐교의 위기에 빠진 학교들이 있다. 혼자서 살리기엔 버겁고 무겁다. 그래서 '우리'가 있지 않은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기적 프로젝트,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이런 아주 작은 것부터 말이다.
#스코틀랜드초등학교 #학교기부파티 #영국기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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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어요. 자연과 사람에게 귀 기울이며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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