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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에 배운 자전거... 시작이 두려운 사람 보세요

무릎 깨지고, 손바닥 찢기고... 두려움과의 싸움이지만 그만큼 가치 있습니다

등록 2024.06.18 15:35수정 2024.06.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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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3년 되었습니다. 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과거 열두 살쯤이었을까. 부산 사직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 대여 시간은 단 1시간. 1초라도 땅에 두 발이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장 옆으로 진열된 상점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여유 있게 쳐다보면서도 자전거를 탔다. 내리막길로 다달을 때면 두 발을 공중으로 번쩍 들고선 가속도의 짜릿함을 만끽했다. 바람이 내 뺨을 스칠 때마다 씽씽 소리가 났었다. 

당시 내가 어떻게 자전거를 배웠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자전거 타기는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 33년이 지났다. 세월만큼 자전거와의 거리는 멀어졌고 자연스레 내 몸도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 


근 80 가까운 친구,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단다

평소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백발의 친구가 어느 날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랜섬으로 일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친구가 79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만 같았다. '너도 해 봐! 지금부터 딱 30년만 타면 일흔에 자전거 여행쯤은 눈 감고도 갈 수 있어'라는 듯이.

그렇게 작년 가을에 시작된 '마흔다섯에 자전거 타기'. 막상 까치발을 하고 간신히 자전거에 올라보니 왜 이리도 높던지. 전봇대 줄을 타려고 올라 선 예비 곡예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9월의 따뜻한 바람에도 손과 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깊게 숨을 한번 고르고 페달을 밟았다. 하나. 둘. 셋. 딱 세 바퀴만 돌렸을 뿐인데 숫자 삼을 그리면서 숲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오른쪽 무릎 청바지가 한 일자로 찢어졌고 붉은 피를 뚝뚝 떨구고서야 깨달았다. 자전거를 배운다는 건 두려움과의 싸움이라는 걸. 
 
a  자전거 도로에 놓여 있는 의자

자전거 도로에 놓여 있는 의자 ⓒ 제스혜영

 
그 가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고 또 종종 떨어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세상 구경을 하지 못했던 자전거를 다시 꺼냈을 때 나는 마흔여섯이었다. 

이제는 자전거 타는 게 제법 즐겁다. 아마도 자전거를 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치리치리' 들리는 새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고, 시냇가로 나와 앉은 검은 소가 몇 마리인지 세어 보기도 한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정도로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로 오를 때면 어디서부터 발을 재빨리 감아야 하는지 감이 오기도 한다. 


자전거 타는 게 무섭지 않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만큼 할 수 없는 것도 여전히 많다. 바람 때문에 앞머리가 눈 위로 떨어졌을 때가 곤혹이다. 어째 머리카락 하나도 쉽게 넘기질 못 하니 어찌할꼬. 어깨가 갑자기 간질간질거릴 때도 긁을 수가 없고, 고개를 돌려 스쿠터 타는 아들이 나를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a  자전거와 도보 길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

자전거와 도보 길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 ⓒ 제스혜영


며칠 전에도 무서운 일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두 마리의 개와 산책하는 할머니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바로 왼편에서 걸었고 갈색 개 한 마리는 할머니 보다 두 걸음 앞에서 오른쪽 나무를 향해 킁킁거리며 걷고 있었다. 잠깐 멈춰서 걸어갈까도 생각했지만, 도로 폭이 내가 옆을 지나쳐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다. 조심조심 페달을 밟으며 할머니 옆을 지나치는데, 갈색 개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확 틀어버리는 게 아닌가. 

개가 치일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나는 자전거 바퀴를 틀었고, 결국 숲 속으로 나가떨어졌다. 왼쪽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사실 왼쪽 손바닥은 저번주 토요일에 자전거를 타다가 이미 다쳤던 자리라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살점이 크게 찢어졌다. 할머니도 놀랐는지 괜찮냐며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은 참 웃긴다. 그렇게 아팠는데도 피가 나오는 손바닥을 허리 뒤로 감추고는 벌떡 일어나 괜찮다며 웃었다. 


그 마력의 힘(?)으로 쓰러진 자전거를 발딱 일으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돌아왔다. 솔직히 자전거 탈 힘이 하나도 없었다. 왼쪽 복숭아뼈도 찌릇찌릇거리더니 거기서 피가 새어 나왔다. 청바지 끝이 복숭아뼈에 닿을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꿋꿋하게 걸었다. 

차들은 많고 자전거 도로는 적은 한국

작년 이즈음, 한국 서울에 머물렀을 때 17살 조카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머리에 안전 헬멧도 없는 채로 산 꼭대기 우뚝 선 아파트에서 아래 경사진 도로로 내 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위험하지 않았냐고 조카한테 물었더니, 큰 도로 말고 골목골목 길을 따라 학교로 가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불안한 게, 한국 골목길에는 불법 주차된 차들이 많아서 길 폭이 더 좁아지는 데다가 쌍방향으로 오가는 사람을 피해서 가야 한다. 모퉁이에서 불쑥 끼어드는 차량들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는 말은, 자전거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거나 겁이 별로 없는 사람일 거란 생각마저 든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만 12세 이상 69세 이하 자전거 이용 인구는 전체의 33.5%였다. 2020년 영국 조사(National Travel Survey)에는 5세 이상 인구 중 47%가 자전거 이용, 매일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은 인구의 20%였다.

자전거 타는 이용자의 수가 한국보다 영국에서 현저하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흔이 넘은 나도 자전거를 다시 탈 만한 환경과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다는 점이다.  
 
a  마을에 대한 역사나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 적혀있는 게시판

마을에 대한 역사나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 적혀있는 게시판 ⓒ 제스혜영

 
일단 자전거 도로. 내가 사는 스코틀랜드 마을 틸리에서 다음 마을인 알로아로 가려면 자전거와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 차로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아이들과 자전거 타기에도 안전하고 급경사가 적어서 나 같은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딱 좋다.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서 도시락을 싸고 여유 있게 놀 수도 있다. A에서 B로 이동시, 이 동네에서 알아야 할 역사나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이 소개되어 있는 게시판이 있는 것도 흥미롭다.

또 하나,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거나 구멍이 났을 때 이를 고치고 다시 탈 수 있도록 그림 설명서와 임시 도구들을 매달아 놓은 곳도 발견할 수 있다. 시골 마을뿐 아니라 런던처럼 큰 도시에서도 대부분 '자전거 전용 도로'가 따로 있어서 출근길이 용이하다. 기차 안에서도 자전거 전용 구간이 따로 있는 덕에,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는 자전거 여행이 한결 편하다.   
       
a  길거리에 배치된 임시 자전거 수리대

길거리에 배치된 임시 자전거 수리대 ⓒ 제스혜영

 
a  다음 마을로 가는 길 by 자전거

다음 마을로 가는 길 by 자전거 ⓒ 제스혜영

 
마흔 다섯에야 다시 타기 시작한 자전거. 어렸을 때 잘 탔으니 몸이 기억하지 않을까란 착각은, 자전거를 탄 내가 내동댕이쳐질 때 내 몸과 함께 넘어졌다. 정말 끔찍했다. 사기당한 기분이었고 자전거에 바이러스라도 묻은 것처럼 만지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 서러움과 미움, 두려움을 이기려면 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와 생각, 작은 시작이나 도전에 두려움을 지닌 당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다. 79살 할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여든이 되도록 자전거 한번 기똥차게 타 봅시다.   
#스코틀랜드 #자전거전용길 #자전거유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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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트랜드에 살고있습니다. 평소 역사와 교육, 자연과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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