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승원 일병의 어머니 고정순씨가 지난 2013년 5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 국회, 국민 호소대회'에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하고 있다.
남소연
드러난 진실에 의하면 손철호 소위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손 소위가 근무했던 GOP는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밤에는 늘 경계근무를 섰고 낮에는 월경 방지판 사계 작업, 교통호·순찰호 주변 제초 작업, 불모지 작업, 폭우로 손상된 보급로 보수작업, 도로 평탄화 작업, 배수로 작업, 진지 보수 작업, 투광등 교체 작업 등 수많은 작업에 시달렸습니다.
병사들은 낫으로 풀을 베어냈고, 손을 베거나 풀독이 오르기가 예사였습니다. 폭우로 인해 가족 면회도 취소되었습니다. 수색 작전 중에 철모에 벼락이 떨어지고 말라리아 환자가 수시로 발생했습니다. 산불도 진압하는 등 부대원 고생은 끝이 없었습니다.
대대본부 등 상급 부대에서는 작업에 대한 독려가 많아졌습니다. 손철호 소위와 부대원은 모두가 과도하게 작업에 시달렸습니다. 많은 작업량에 지치고 다친 병사들은 불만이 폭발했고, 손철호 소위는 고생하는 부대원을 작업 도중 철수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조 아무개 중대장이 작업을 독촉했습니다.
윤 아무개 대대장과 조 아무개 중대장은 부하 잘못에 대해서 곧바로 질책했습니다. 중대장은 망원경으로 병사를 감시했고, 초소에서 병사가 졸고 있으면 그 병사를 완전군장 차림으로 포복해서 기어오게 했습니다. 또 화를 낼 때 "개새끼, 소새끼"은 보통이었고 "XX놈, XX끼"라는 욕도 난무했습니다. 특히 소대원이 있는 자리에서 욕설을 섞어 야단을 쳤고, 손철호 소위는 소대원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 주눅 들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장 아무개 부소대장의 하극상도 심각했습니다. 자신보다 소위 '짬밥'이 적다는 이유로 손철호 소위를 애먹이고 지시에도 불응했습니다. 부소대장 자신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때도 소대장인 손철호 소위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으로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손철호 소위가 중대장에게 질책받는 일이 늘어나자, 부소대장은 손철호 소위와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그를 무시했습니다.
소대에는 병사 간에 악습이 있었는데요. 후임은 선임 휴식 시간을 늘려주려고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근무를 교대했고 식당 내 취사장에서 식기를 세척 할 수 없었습니다. 손 소위는 본인이 솔선수범을 보이며 악습을 없앴는데요. 이번에는 병사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왜 갑자기 체제를 바꾸는 것이냐! 저 새끼 왜 저러느냐!"며 대들었습니다.
손철호 소대장은 부임한 직후부터 한 달까지는 병사들과 작업이나 운동도 같이하고, 이동식 PX 차량이 왔을 때 먹을거리를 사주며 격려했으며 특히 이등병을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말없이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고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걱정이 많았으며, 짜증을 내고 욕설을 많이 했습니다. 대화를 기피했고 잘 자지도 못하며, 식사를 못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근무 중에 졸거나 멍한 표정을 지었고 행동이 느려졌습니다.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는 일이 늘었습니다.
수면장애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는데요. 소대장은 보통 오전에 3~4시간, 야간 근무 전에 2~3시간을 자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지휘 보고, 상급 부대 연락, 기타 업무로 인해 하루에 2~3시간도 제대로 취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밤낮을 거꾸로 생활해야 하는 GOP 특성상 손 소위는 하루 2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고, 그 생활을 무려 2달 가까이 이어갔습니다.
주요우울장애 발병한 이들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손철호 소위는 수면장애, 정신운동 흥분, 피로와 에너지 상실, 우울감, 정신병적 증상, 자살 사고, 심한 불안 증상 등을 보였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주요우울장애' 진단에 부합하는데요. 위원회는 손철호 소위가 겪은 열악한 근무 환경, 과중한 작업, 과로, 극심한 수면 제한, 중대장 질책과 욕설 등 스트레스로 인해 '주요우울장애'가 발병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정상 의사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자살로 이어진 게 아니라 "질병 발생 또는 악화가 공무수행과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된 사망 또는 상이자"에 해당되는 결론이었습니다.
이승원 일병 내무 생활도 가혹행위와 성추행, 간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이뤄졌습니다. 후임병은 사소한 실수 때문에 욕을 먹었습니다. 탁구장, 비닐하우스, 족구장에 집합해서 머리 박기,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서기, 오리걸음, 선착순 등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소원 수리를 적어내려고 해도 고참이 사전에 단속한 데다 보복이 두려워 적어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선임병 박 아무개 병장은 후임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박 병장은 평소 후임 돈을 짤짤이를 구실로 갈취했습니다. 후임병이 근무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투복 하의를 벗게 하고 성기를 30분이나 주물렀습니다. 후임과 가위, 바위, 보를 하여 머리털과 겨드랑이 털, 성기 털을 잡아 당겨 뽑았습니다. 함께 근무를 서던 후임병에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성기를 꺼내 자위를 해보라 시키기도 합니다.
이승원 일병이 실수를 하자 박 병장은 욕설과 함께 머리 박기, 쪼그려 뛰기, 제자리 앉아 일어서기 등 가혹행위를 15분간 이어갔습니다. 또 이 일병이 졸았다는 이유로 양팔을 편 채 5분 간 소총 2자루를 들고 서 있게 하고, 또 하루는 이 일병이 체력이 약해 따라오지 못하자 오리걸음 30m, 팔굽혀펴기 50회를 시켰습니다. 군가를 부를 줄 모른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제자리 앉아 일어서기 15분, 작업 시 질책을 받았다는 이유로 후임병 7명에게 선착순과 오리걸음 20분을 시킵니다. 가혹행위는 끝이 없었습니다. 총기 개머리판으로 폭행, 깍지 끼고 팔굽혀펴기, 앞뒤로 취침,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서기 등 폭력이 일상이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입대 전에는 정신병 증상이 전혀 없었고 밝고 쾌활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상급자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결과 항상 혼비백산한 초조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남보다 2~3배 많은 양을 먹었고, 담배를 많이, 그리고 끝까지 피워댔습니다. 동기를 보면 "짜증이 난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화장실에서 훌쩍이는 모습도 발견됐습니다.
결국 군대 내 가혹행위와 간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주요우울장애'가 발병했고, 그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해 상태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근무 환경 변화나 치료가 필요했지만 그는 군대에서 그저 방치당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승원 일병 역시 자유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공무수행 중 발병한 질병에 의한 사망이었습니다.
손철호 소위는 장병 1묘역 147-10761호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승원 일병은 장병 1묘역 149-44278호에 잠들어 있습니다. 같은 묘역 안에 불과 50m 떨어져 있습니다. 1998년 대한민국 군대는 장교와 사병을 가리지 않고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GOP 근무 중 '주요우울장애'를 앓게 되었고 극단 상황으로 몰려간 그들의 슬픈 인연이 대전현충원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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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GOP에서 사망한 장교와 사병, 두 죽음을 연결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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