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동상
박민서
시간이 흘러 불과 몇 개월 전,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김활란의 친일행적과 반여성적 친미행각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역사학자 출신의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과거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활란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이 미군정 시기에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한 발언이 밝혀지면서 한바탕 시끄러워진 것이다.
'미군정 시기에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의 근거는 바로 '낙랑클럽'을 가리킨다. 낙랑클럽은 미국 정보기관인 CIC 비밀문서에 나왔듯이 김활란이 대표로 있었고 시인 모윤숙이 운영했으며 영어가 가능한 당시 이화여전 출신으로 구성된 미군 및 외국인 대상 사교클럽이다.
한국전쟁 중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도 운영되었는데, 실제로는 사교·위문 뿐만 아니라 매매춘이 이뤄졌으리라는 기록이 나온다. 재미학자 박해성과 헨리 임 등 여러 연구 논문에는 낙랑클럽은 기생파티(gisaeng parties)를 하는 곳으로 나와 있다.
논란 이후 김 후보는 자신의 '성상납' 발언을 사과했지만, 이화여대 총동문회가 성명서를 내고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교내 집회를 여는가 하면, 김 후보를 옹호하는 인사와 단체의 맞불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공방은 지속됐다. 경기도에 출마한 이대 출신 한 후보는 김 후보를 맹비난하며 유세에서 김 후보의 발언을 겨냥해 '미군에게 성상납을 한 이대 출신입니다' 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두 후보는 모두 당선되었다.
성명과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쟁점 중 하나는 '낙랑클럽'이 언제까지 존재했냐는 것이다. CIC 비밀문서에 따르면 해방 후 1948년 말 혹은 1949년쯤부터 사회단체로 등록돼 1953년 휴전 후 미군정이 끝나면서 해체됐다.
그러나 맞불 기자회견을 주도한 고은광순씨가 1950년대 중반,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자신의 이모가 단체미팅으로 만난 미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낙랑클럽이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도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놨다. 이때 고은광순씨가 기자회견 중 개별 발언 시간에 자신의 이모 입학년도를 1948년으로 잘못 말했는데, 이대 정외과 총동창회는 입학년도를 1956년도로 확인하면서 고은광순의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는 미군정기가 1953년 끝난다고 하면서 낙랑클럽의 해체를 암시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낙랑클럽이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 등 정확한 사실관계는 앞으로 누군가가 밝힐 과제일 것이다.
초대총장 김활란은 일제강점기 정신대 동원 연설부터 미군정 시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 그리고 박정희 정권까지 계속해서 권력의 양지만을 지향한 인물이다. 그는 친일파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수많은 여성 제자들을 학교 발전의 단순한 도구로 이용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보여 온 반민족·반민주·반여성 행태를 직시하면 기독교 정신으로 식민지 여성을 계몽·교화시켜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각계의 찬양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다시 두 장의 대자보로 돌아가 보자. 대자보를 쓴 이는 김활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먼저 졸업한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을 작동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글쓴이의 질문과 문제의식은 하느님과 기독교 정신을 앞세워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과 그 인민들에게 가했던 반인륜적이고 반역사적 과오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그러한 정당화를 수용하고 내면화시키길 강요하는 데 있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여성지도자 양성과 여성교육의 산실로서 자부하고 있음은 자명하며 누구도 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학교 성장과 발전에 드리워진 흑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적어도 '배꽃요정' 영상을 틀게 만든 차원에서는 찾기 힘들어 보인다. 그들 대다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하며 또한 현재 사회와 그리고 이화 구성원을 너무 안이하고 편향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하다.
2013년 철거 요구가 쓰인 포스트잇으로 뒤덮이고 2016년 페인트칠과 달걀로 더럽혀진 수난을 겪은 후에도 2024년 6월, 김활란 동상은 여전히 캠퍼스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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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이화여대 두 장의 대자보가 소환한 김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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