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배팅 연습을 하는 크루들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
센터를 통해 얻은 변화들
"그렇게 1년 정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어떤 코치님이 내가 변했다는 얘기를 해줬어. 처음엔 얼마 못 가서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꽤 오래 지속됐다고 해. 원래 나는 귀찮은 걸 싫어하고,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남들의 눈치를 잘 보고, 머릿속으로 핑계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었지.
그런데 센터에서 지내면서 내가 남들을 위해 수고를 하는 이타심과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게 보였나 봐. 내가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센터에서 상주하신 코치님들의 모습 때문이야. 나한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일상에 담긴 섬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본받고 싶고, 자기 중심성을 깨트리고 싶었어. 그때부터 나도 코치로 다른 누군가를 섬기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마음속에 심어졌어."
H는 지난 4월부터 코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고립 은둔 청년으로 센터에 와서,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를 맺고, 이제는 베푸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리커버리 센터에는 H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을 몇 명 더 찾아볼 수 있다. 자립은 결코 홀로 서기 위함이 아니다. 개인이 성숙한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삶을 이끌 수 있게 돼 다른 누군가와 '공생'하는 것이 자립의 진정한 목표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 일은 4월부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건 이번 주가 처음이거든. 처음에 코치직을 제안받았을 때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는데, 이제 정말 눈앞에 맞닥뜨리니까 '잘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도 생기는 것 같아. 물론 센터에서 지금까지의 여정 그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얻은 게 정말 기쁜 일이라 생각해. 아직 부족한 것도 많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점점 찾아보려고.
고립 은둔 청년을 위해서는 센터라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그곳에서 함께하는 코치의 역할이 중요해.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정말 크거든.
처음에 나는 크루로 오래 있었으니까, 코치가 돼서도 하는 일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고민도 있었어.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오히려 좋은 거 같더라고.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항상 하던 대로 자리를 지켜주는 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니까."
한때 고립 은둔 청년으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어떤 선과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려 해. 사실 그 기준이라는 건 우리 사회가 만든 것이야. 그러한 선과 기준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사람이 고립 은둔 청년이라고 생각해.
이것은 분명히 사회적 문제야.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버리면 그건 잘못된 진단인 거지. 고립 은둔 청년은 스스로 문제를 빠져나갈 힘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들을 방치한다면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게 돼 있어. 편견을 거두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해.
또 우리에겐 사람들과 같이 부대끼고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해.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실수하고 실패도 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야지. 취업이나 인간관계,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좌절에서 끝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붙잡고 일어서거나 잠시 걸터앉을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해."
H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있을 쿠킹런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메뉴는 잔치국수. 30인분가량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메뉴를 미리 정하고 전날에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H의 머릿속은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재료를 손질하려 애쓰는 모습과,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할 크루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난다고 그는 말한다. 고립 은둔하던 시절에 H의 머릿속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스스로를 찌르고 어둡고 좁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시선은 다른 누군가를 향한다. 나를 가득 채우던 자리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때, 비로소 자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을 보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하는 H의 발걸음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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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안 가고 심야까지 게임만... 고립은둔청년이 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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