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보살도
호암미술관
그런 무상함을 거쳐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 또한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원래 '보살'은 인간 상위의 존재로 성적으로 규정된 대상이 아니었지만 '자비'의 상징으로서 '여성성', 특히 모성성이 가미되어 점차 여성의 모습으로 상징화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수월관음보살도> 등의 불화와 함께 백자나 금동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 등이 보여진다. 특히 1907년 부여에서 발견된 보기드문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전시된 작품이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차치하더라도 한 뼘도 되지 않은 작은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물결치듯 유려한 옷자락의 섬세한 모습에 그 작품성의 가치를 수긍케 한다.
흥미로운 건 18세기 청나라 덕화요의 백자 작품들 사이에서 보여진 동서양의 서로 다른 종교적 접근이다. 똑같이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모습인데 불교적으로는 아이를 돌보고 낳게 해준다는 송자관음보살상이 만들어졌다면, 기독교적으로는 성모 마리아 상이 등장한다.
이처럼 전시를 통해 동서양의 서로 다른 종교적 접근이라던가, 같은 대상에 대한 한, 중, 일 삼국의 서로 다른 묘사, 그리고 각 나라가 주요하게 천착했던 작품들을 보며 문화적 차별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런가 하면 한때는 '나쁜' 존재였지만 각성하여 불성의 존재로 거듭난 이들도 있다. 인도의 토속신앙 여신이었던 얼굴이 세 개 팔이 여덟 개인 마리시가 불교에 흡수되어 수호신이 되었다. 고려 시대 작품인 은제 마리지천 좌상은 케이스와 함께 목에 매달거나 벽에 걸어두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만화를 좀 봤다면 익숙한 인물도 있다. 바로 <손오공>에 등장했던 우마왕의 아내 나찰녀이다. 파초선으로 화염산 불길을 부쳐대던 그녀, 그런데 이 만화 속 악인은 가공인물이지만 <법화경> 속 사람을 잡아먹던 10명의 악귀가 그 유래이다.
이들 나찰녀들은 석가모니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다는데, <석가여래오존 십나찰녀도>에서 그 모습을 그려낸다. 특히 일본 귀족 여성들이 자신들과 같은 여성의 모습을 한 나찰녀들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꼈던 듯하다.
사람을 잡아먹기로 치면 1만 명의 자식이 있는데도 남의 자식을 훔쳐 잡아먹던 귀자모만 할까. 전시된 <게발도>는 석가모니가 귀자모의 아이를 발우 그릇에 숨기고 귀자모가 부하들을 동원하여 아이를 들어올리려 애쓰는 모습을 그려낸 장면이다.
이 시련을 겪고 자기 아이만큼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아이들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고. 이처럼 전시된 그림 한 점 한 점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불교의 다양한 여성신들은 물론, 그 신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아시아의 고전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