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시간>겉표지
나의시간
김이구. 그는 '느린' 편집자였고 오랜 기간 편집자였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편집자이다. 1958년생인 그는 1984년부터 창작과비평사(창비)에 입사하여 '평생 편집자'로 살아왔다. 이 이상 좋을 수 없다는 글도 '진짜' 편집자를 만나면 날개 단 것처럼 아름다운 글이 되고, 이 이상 고칠 것이 없다는 글도 '좋은' 편집자를 만나면 더욱 말끔해진다.
'평생 편집자' 김이구가 '느린 편집자'이기도 했던 것은 사라질 수 있었던 좋은 글을 살리고 더 이상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 글을 더 넓은 세상에 알리려 그의 시간들을 참 많이도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을 살려내고 빛을 내주는 일을 해왔던 '평생 편집자' 김이구가 편집자로서 쓴 글들 가운데 일부를 모아낸 책이 <편집자의 시간>이다.
편집자의 시선은 누군가의 글 위에서 어떤 길을 따라 움직일까? 그러니까, 편집자는 그 누군가가 쓴 글을 읽으며 무엇에 마음이 가며 무엇을 찾아내려 할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편집자에게 맡긴 내 글이 어떻게 달라져 나올지 궁금함과 동시에 기대된다. 설레는 마음마저 들게 한다. 김이구, 그는 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매만져주었을까?
모순된 존재, 편집자
'평생 편집자' 김이구는 편집자는 참 모순된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은 푸념은 아니고, 아니 약간은 푸념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답답한 자기 위치와 역할에 대한 짧은 소회를 뭇 사람들에게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는 보이지 않지만 글을 아름답게 만드는 손을 가졌을 것이다.
편집자로서 쓴 글들을 모은 이 책 <편집자의 시간>은 2002년쯤에 쓴 글을 비롯해 2016년에 쓴 글까지 15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는 글들이다. 그의 편집 인생 중의 절반쯤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적잖은 시간이고, 김이구 그가 아무리 글 이면에 있는 사람이어도 그간 보고 매만졌던 수많은 글들을 보며 '편집의 시선'으로 한두 마디 정도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시선, 그 마음, 그 글들이 바로 이 책이다.
많고도 다양한 글들을 매만져 말끔하게 옷 입히고 빛을 더해주었을 그의 시선, 그의 마음, 그의 흔적을 그의 입과 손으로 다시 접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가 편집자로서 남긴 글이 2016년 말쯤에서 멈춘 것은 아마도 그가 2017년에 세상과 원치않는 이별을 했어야 했기 때문일 듯하다. 그는 편집자의 시간을 세상에 남겨두고 지금은 먼저 잠들어 있다.
오랜 현장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각된 편집의 사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는 이 책은 마이스터의 지경을 넘본다. 아무리 원고가 좋아도 그 가치를 알아볼 편집자를 만나지 못하면 독자를 만날 기회를 앗을 것이고, 다행이 알아본들 훌륭한 책으로 만들어낼 실무역량이 부족하면 또한 묻히기 십상이니, 새삼 편집자의 덕목들을 두루 아우른 김이구 형 같은 정성스런 편집자의 존재가 무겁다. - 이 책, 8쪽, '서문'에서
1958년생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무주茂朱 김공公 김이구를 위해 창비 선배이자 인생 후배인 최원식이 쓴 서문은 굳이 그의 이름을 또렷이 불러주고 또 불러준다. 김이구 그가 얼마나 많은 편집자의 시간을 글쓴이를 아끼는 마음으로 보냈으며 글을 살려주는 길을 찾기 위해 썼는지 편집자의 존재를 알지도 못할 뭇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아마도, 최원식이 알리고자 했던 것은 김이구 그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더는 이어지지 않는 '편집의 시간'을 한 번쯤은 이렇게 되살려 세상 뭇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알아채는 편집자의 시선
김이구의 창비 선배 최원식은 김이구를 잘 알겠지만 나는 '평생 편집자' 김이구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다만 내가 그의 흔적이 담긴 책 <편집자의 시간>을 읽으며 든 생각은, 그도 내 글을 매만져주는 누군가처럼 글이 될 만한 글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람이었으리라는 것이다.
김이구 그가 편집자의 위치에서 쓴 글들은 1부 '편집자의 존재', 2부 '편집의 시간', 3부 '편집자의 눈'에 나누어져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4부 '우리말 클리닉'에도 그의 편집자의 시간과 시각이 담겨 있다.
'평생 편집자' 김이구를 '아름다운 손'을 가진 편집자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소설가 공선옥의 투고작 <씨앗불>을 살려낸 일화에 잘나타난다. 그는 공선옥의 이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신인투고작을 바쁜 중에도 가능한 많은 분량을 읽어내주며 "'뭔가 있는' 작품을 놓치지 않고자"(35쪽) 애를 썼다.
딱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투박한 신인의 작품에 있을지 모를 '뭔가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주고 세상에서 쉬이 덮히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안 그래도 한정된 시간에서 굳이 '편집의 시간'을 '뭔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신인작품들에 더 내주어가면서 말이다.
김이구는 공선옥의 <씨앗불>을 마주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당시 많이 쓰던 원고지 사용법이며 띄어쓰기며 '뭔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눈을 가리게 하는 것들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문체나 어휘 사용이 눈에 띄는 다른 글들에 비해 한참 부족해보였던 <씨앗불>에서 김이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지만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절실함이 전해져서 나는 최종 판단을 편집위원들이 할 수 있도록 이 작품을 발탁했다"(이 책, 36쪽)고 말한다.
무슨 이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김이구 그는 아마도 '편집자의 시선'으로 그 작품에 '뭔가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이리라. 그 외엔 그 작품을 살려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여하튼 그렇게 공선옥의 <씨앗불>은 살아났고 세상의 빛을 받았다. '편집자의 시간'을 거쳐서 말이다.
김이구 그가 남긴 '편집자의 시간'들을 내가 자세히 알 길은 없다. 다만, 그가 편집자로서 남긴 글들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매만져주는 편집자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한 마디로 <편집자의 시간>은 '누군가의 시간'을 거친 뒤에라야 빛나는 글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 하겠다.
편집자의 시간
김이구 (지은이),
나의시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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