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이들의 미래 '서른 살의 명함 만들기' 진로활동아이들이 그려내는 다양한 미래 직업 앞에서 그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꿈꾸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멋지고 기특하다.
한현숙
진로탐색 중인 아이들 옆에서 그 직업이 좋아 보인 이유를 묻기도 하고, 꼭 꿈을 이루라며 격려도 하며 나름의 진로시간을 이어가고 있는데 문득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샘(선생님)은 왜 교사가 됐어요?"
특별할 것 없는 이 사소한 질문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왜 교사가 됐는가. 만 4세부터 교사의 꿈을 꾸고 어릴 적 소꿉놀이도 안 하고 선생님 놀이만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해 왔었는데, 정말 난 왜 교사를 꿈꾸게 됐을까? 아이들이 미래의 명함을 만드는 동안 나는 이미 만든 내 명함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교사가 되었는가? 그리고 왜 교직을 좋아하게 됐는가?
교직경력 30년 이상을 꽉 채워 원로교사가 된 이 마당에, 명퇴와 정퇴 사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갔다 하는 이 시점에 새삼스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니! 어쩜 마지막일지 모르는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어서 그럴까?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교사로서 무게감을 감당하기 버거워서일까? 한 없이 떨어지는 시력과 기억력에 자신감이 때때로 사라지기 때문일까? 토론의 지식을 전달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 방법을 실행하기는 어려운 토론 수업을 진행하며 한계를 느껴서일까?
마침 6월부터는 40호봉을 끝내고 근 1호봉으로 시작하는 월급명세표를 받는다. 내 나름의 전환기를 맞이하며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퇴근 후까지 이어졌다.
30여 년 전 임용고시 합격은 내 인생의 결핍과 상실을 메워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려움 속에서 나를 키워낸 엄마의 자랑이 됐으며,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미는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키울 수 있었던 점이다.
돌아보니 그대로인 듯한 학교와 교육현장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체벌이 존재하던 때, 아이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받았던 시절, 방학 때 아이들의 손 편지가 집주소로 오가던 기억, 아이들 머리 길이와 바지통까지 지도하던 때 등등. 부끄러움과 아쉬움 때로는 그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떠올리는 기억들이 두서없이 펼쳐진다.
이번 진로 수업 중, 반드시 Y의대를 가겠다고 다짐하는 학생 B를 떠올리며, 마침 그 대학을 다니는 조카에게 그 대학 문구가 새겨진 학용품을 부탁해 B에게 건네주고, 점심시간에 깃털이 다 떨어진 셔틀콕으로 배드민턴을 치는 1학년 아이에게 쓸 만한 셔틀콕을 줄 테니 다음날 5층 교무실로 찾아와라 약속하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만족감에 젖어 웃는다. 그리 친절한 교사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에게 관심 있는 교사라며 스스로 위안과 위로를 삼으며 버텨온 듯하다.
'교사가 행복해야 교실의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진심으로 내면화하며 지내온 교직 생활인 듯하다. 나를 지키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의 관심과 내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며 아이들과 지내온,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웬만하면 행복했고 스스로 적성에 맞는다 여기며 학교에서의 기쁨을 찾았던 것 같다.